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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비인간 동물' 돼지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2019.08.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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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7월호(622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육식 위주의 식문화가 야기한 공장식 축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해진 가축들의 불행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세세히는 모르더라도 공장식 축산이 생명의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비켜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우리는 고기로 가득한 식단을 매 끼니 선택한다. 아니, 많은 경우 식당과 식품기업으로부터 자기도 모르는 새에 강요받는다.
필요 이상의 고기를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정작 내 일상을 바꿔내는 실천을 마음먹기는 쉽지 않기에 그것을 지적하고 또한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이와의 만남은 불편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와 저서 <사랑할까, 먹을까>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채식의 필요성을 부단히 이야기해온 황윤 감독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인간보다는 동물을 주로 다루는 이유’를 물었을 때 황윤 감독은 동물 표현부터 정정해달라 요청했다. “인간도 동물인데 인간 이외의 수많은 종을 동물이라고 싸잡아 이야기하는 것에는 인간중심적이고 종차별적 시선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인간 동물’, ‘비인간 동물’이라는 말을 20년째 쓰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는데 어느새 많은 사람이 쓰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조금씩 세상이 바뀌어 가는구나 싶죠.”
존재를 규정짓는 것이 호칭이라는 점에서 비인간 동물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느껴졌다. 동물원을 우리에 갇힌 비인간 동물들의 시각에서 그린 <작별>(2001),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찾아 중국 연변과 백두산으로 간 <침묵의 숲>(2004), 인간을 위한 도로에서 희생당하는 야생동물 로드킬을 이야기하는 <어느날 그 길에서>(2006), 그리고 공장식 축산에 고통당하는 돼지를 다룬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까지. 그가 그려온 영화 대부분이 비인간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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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대한 관심이 비인간 동물로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꿈을 가졌던 것도, 비인간 동물을 주제로 영화를 찍으리라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 뜻에 따라 영문과에 들어갔는데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많은 울림을 받았고 ‘예술이 이런 큰 힘을 지녔구나’라고 생각했죠.
졸업 후 일반 회사에 취직했는데 여기저기 아파서 결국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뒀어요. 그제서야 ‘이제 뭐하고 살지?’라는 고민과 함께 내가 무엇을 진짜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됐죠.”
당시는 한국 영화가 다방면으로 기지개를 켜던 시절이었다. 씨네21 같은 영화 잡지가 창간했고, 케이블TV에 예술영화 전문채널도 만들어졌으며, 그를 다큐멘터리 영화의 길로 이끈 부산국제영화제도 그 즈음 시작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 가서 우연찮게 본 영화가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어요. 잊히면 안 될 이야기들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느꼈죠.”
영화를 만드는 워크숍을 듣고, 소규모 창작집단에 가입해 단편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감독으로의 길을 다졌다. 첫 단독 연출작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 촬영 현장에서 만난 젊은 스텝들의 불규칙한 일상과 저임금, 과노동을 이야기한 <겨울밤, 이야기를 듣다>(2000)였다. ‘약자에 시선을 맞추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임을 다시금 가슴에 새긴 그는 이후 모든 인간보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동물에 시선을 뒀다.
“우연히 동물원에서 머리를 시계추처럼 계속 흔드는 북극곰을 봤어요. 정말 비정상적인 행동인데 그것을 보는 관광객들은 북극곰이 춤춘다며 환호했죠. 동물원이라는 공간과 그 안의 동물들이 낯설게 느껴져서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조명한 영화를 찍게 됐어요. 그게 <작별>이라는 영화였죠. 이후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를 화두로 삼고 지금까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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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키우고 적게 먹는 것이 방법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찍게 된 계기는 2011년 전국적으로 행해진 구제역 살처분이었다. “저 돼지들은, 내가 먹는 그 돼지들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호랑이도 보고 마운틴 고릴라도 봤는데 정작 살아 있는 돼지는 평생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요.”
영화를 위해 공장식 양돈농장을 취재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이빨과 꼬리를 잘리고, 햇빛 한 줌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몸 크기와 똑같은 철제 스톨에 갇힌 채 자라는 돼지들이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탐욕으로 무정하고 비정하게 사육되고 있었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와 이후 이야기를 담은 저서 <사랑할까, 먹을까>에는 소규모 양돈농장 이야기가 나온다. 그곳의 돼지들은 저마다 이름을 부여받고 어미 돼지의 품에서 건강하게 자라다가 소비자에게 간다.
“지금의 축산 규모로는 모든 돼지가 그렇게 자랄 수 없어요. 적은 인원으로 많은 돼지를 키우려다 보니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한 시스템을 찾을 수밖에 없었겠죠. 그렇다면 문제는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꿈꾸는 미래는 이렇다. 생산자는 적은 수의 돼지를 최대한 돼지의 섭생에 맞게 키우고, 소비자는 그만큼 고기를 적게 먹는다. 돼지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가격이 지금보다 올라가더라도 소비자는 적게 먹으니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생산자는 줄어든 사육두수로 인한 손해를 가격 상승으로 뒷받침한다.
“저는 한살림 애호박을 좋아해요. 시중 애호박은 비닐 속에서 일정한 모양과 크기로 자라는데 한살림 애호박은 구부러지기도 하고 크기도 제각각으로 자라잖아요. 꼭 맞는 비닐에 키우면 상품성이 높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방식을 택한 것이 한살림 생산자의 힘이겠죠. 돼지도 그렇게 키웠으면 좋겠어요. 저는 채식을 하고 있지만 누가 수많은 고기 중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면 저는 여전히 한살림을 권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보다 더 돼지를 생명답게 키운다면 좋겠어요. 우리가 먹는 생명이 어떻게 자라는지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칠 테니까요.”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