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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수도자의 영성으로 묵묵히 싸워나갑니다

2019.08.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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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호(624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자칫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길임에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안온했던 일상을 포기하고 그 길을 걷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쉬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그러마’ 하며 한걸음 내딛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러한 이들의 헌신에 기대어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해간다.
환경운동가이자 기자로 더 알려져 있는 최병성 목사도 그런 이다. 영월 서강 쓰레기처리장 설립을 막아내고, 쓰레기 시멘트 회사들과 싸우고, 4대강을 지키려 나서고, 용인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왔다. ‘하나님이 이끄셨기에 수도자의 마음으로 따랐을 뿐’이라며 담담히 이야기하는 최병성 목사의 맑은 눈과 온화한 말투에서 다부진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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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 끝에 아내를 죽인 후 지하실 벽에 묻어 은폐하려 했지만 함께 묻힌 고양이의 비명으로 범죄가 탄로 난다. 19세기 추리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의 한 장면이다. 벽 안에 시체가 있다니, 그것도 살아있는 고양이와 함께. 참으로 섬뜩한 장면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소설 속이 아닌 우리와 우리 가족이 사는 바로 그 집이다. 우리집 벽을 만드는 시멘트에 석탄재, 폐타이어, 폐비닐, 하수 슬러지, 거기에 일본산 방사성물질까지 들어가 있다면 어떤가. 정말 공포스럽지 않은가?
우리집을 ‘쓰레기 시멘트’로 만든다니, 쉬이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다. 본래 시멘트는 석회석에 철광석이나 규사, 점토 등을 섞고 고온에서 구워 만든다. 그러나 1999년 환경부가 폐기물관리법시행령을 개정, 시멘트를 굽는 소성로를 ‘소각시설’로 인정한 이후 석탄재, 철강슬래그, 폐타이어 등 산업쓰레기를 태우고 남은 재가 시멘트에 추가로 들어가게 됐다. 1999년 이후 만든 집 거의 대부분에 이러한 쓰레기 시멘트가 들어갔다는 뜻이다.
시멘트 회사는 원료비와 연료비를 절감하며 쓰레기 처리비 등 부수입까지 올리고, 정부는 타고 남은 2차 폐기물을 매립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물론 좋은 이들 중 시멘트로 만드는 집에서 살아야 하는 국민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시멘트 회사들과 환경부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시멘트에 중금속이 들어 있지 않다고 했다가, 검출되자 시멘트 자체가 굳어서 나쁜 성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 식이에요. 어떤 유해성이 있는지 모르는 채, 쓰레기 시멘트로 만든 집에 살아야만 하는 국민들의 불안함은 누가 잠재울 수 있을까요.”
그가 10년 넘게 싸워왔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쓰레기 시멘트 문제는 최근 다른 경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국내 시멘트 회사들이 오래 전부터 일본산 석탄재 쓰레기를 수입해 시멘트를 만들고 있었음이 한일 관계 악화를 계기로 밝혀진 것이다. 방사성물질 우려에 시민사회는 들끓었고, 여론에 밀린 환경부는 일본산 쓰레기의 수입검사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최병성 목사는 환경부의 결정이 “쓰레기 시멘트의 본질을 흐리고 시멘트 회사들만 챙기는 일에 불과하다”며 비판했다. “검사 결과 방사성물질이 나오지 않으면, 나아가 일본산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끝나는 건가요? 애초에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드는 것부터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에 따르면 32평 넓이 아파트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멘트의 가격은 약 150만 원. 그중 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만 원 내외다. 우리는 수억 원짜리 집에 살면서 30만 원 때문에 아토피 등 환경병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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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따르게 된 환경운동의 길

시멘트 회사들을 상대로 십 년 넘게 싸워 왔지만 본래 투사의 성향을 지닌 이는 아니었다. 그와 한 번이라도 대화해 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듯, 눈빛부터 말투까지 온화함이 가득 담겨있다.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환경운동과는 전혀 접점이 없었어요. 그냥 자연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자연을 카메라에 담고, 숲생태교육을 하는 정도였죠.”
평범했던 최병성 목사에게 환경운동가로서의 운명이 찾아왔다. 누군가는 ‘잘못 걸렸다’며 피하고 말았을 일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받아들였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더 잘 만나기 위해 영월로 이사를 갔는데 몇 년 후에 서강에 쓰레기처리장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지역주민들과 몇 년간 싸워 겨우 이겼죠. 그다음에는 영월에 있는 시멘트 공장에서 나오는 분진 때문에 땅이 썩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사하다가 쓰레기 시멘트의 정체를 알게 되어 싸우기 시작했죠.”
그뿐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시작한 4대강사업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몇 해 전 이사 온 용인에서는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난개발백서를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앞장서야 하는 일이잖아요. 누군가 나 대신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더라고요. 제가 져야 할 십자가인데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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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영성으로 자본과 권력에 맞서다

환경운동의 역사를 훑어봐도 최병성 목사만큼 다양한 싸움에서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이겨낸 사례는 찾기 어렵다. 서강을 지켜낸 것은 물론 쓰레기 시멘트의 환경기준도 대폭 높였고, 용인시에서도 기준과 조례를 개선하고 있다. 그는 ‘지지 않는’ 비결로 사진, 꼼꼼한 자료 조사, 1인 미디어를 꼽았다.
“가장 큰 무기는 사진이었어요. 서강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 아름다운 생태를 찍은 사진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고, 쓰레기 시멘트도 폐기물이 쌓여 있는 현장 사진 덕을 많이 봤죠. 다음으로 철저한 자료조사도 중요해요. 인터넷에는 정말 많은 자료가 숨어 있잖아요. 수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현장조사를 더해 단단한 논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1인 미디어가 되었기에 가능한 점도 있어요. 언론이 조명해주지 않아도 내가 미디어가 되면 SNS 등을 통해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우리끼리만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아요. 잘 모르는 대중을 깨워나가야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런 그도 싸움이 벅찬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의 명목으로 당하는 수억 원대의 소송은 그를 매번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매번 이긴다고 두려움이 없겠느냐마는 수도자의 영성에 힘입어 묵묵히 걸어나간다.
“제가 쓰레기 시멘트 싸움에 처음 뛰어들 때가 마침 김용철 변호사와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삼성과 싸워 졌을 때였어요. 변호사이고 종교단체와 함께하고 있었는데도 자본과 권력은 당할 수 없던 거죠. 지인들도 ‘당신이 아무리 의롭다고 해도 당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어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서너 살 먹은 여자아이가 아토피로 온몸을 긁고 있고 엄마는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것을 보고 쓰레기 시멘트와 싸우기로 결심했죠.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왔네요.”

소설 《검은 고양이》는 시체와 함께 묻힌 고양이가 지른 괴성 덕분에 경찰이 벽 속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최병성 목사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당신의 집이 쓰레기로 만들어지고 있다”며 벌써 10년 넘게 소리치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 그 외침에 동참해 함께 시멘트 벽을 내리쳐야 할 때다.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