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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땅을 살려야 한다는 굳은 철칙으로

2019.05.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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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검은색 천막이 펼쳐진 곳이 수삼 농지라는 건 알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자라는지는 몰랐다. 인삼은 재배가 어렵고 농약을 많이 쳐야 하는 작물이라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다. 홍삼액을 공급하는 충남 서산의 가림다마을영농조합 도상 록 생산자를 만나러 가는 길, 서산 근처에 오자 역시나 검은 천막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수삼은 경사가 완만하고, 배수가 잘 되며,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잘 자란다. 서산은 여름에 비교적 기온이 낮고 황토가 많아 수삼 재배로 유명한 곳이다. 가림다마을영농조합의 도상록 생산자는 90년대 한살림 실무자로 10년을 일한 뒤, 땅과 더 가까이 살고 싶어 생산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홍삼액을 만들 계획은 아니었다. 농사를 공부하며 약초가 좋아 황귀를 재배하다 수삼과도 가까워졌다. 이후 서산인삼농협 시설을 이용하여 홍삼액을 생산하고 2005년부터 한살림에 공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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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관리부터 시작하는 수삼 농사

가림다마을영농조합에서는 총 스물 네 곳의 농가와 수삼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이중 서산, 태안, 예산, 홍성, 당진 등 열 여덟 농가는 농약을 관행보다 1/6 수준으로 적게 사용하며 농사짓는다. 나머지 여섯 농가는 괴산, 안성, 상주, 안동 등에서 어린이홍삼액의 원재료가 되는 유기 수삼을 재배한다. 가림다마을과 계약재배하는 농가는 수삼을 기르기 전 조금 특별한 과정을 거친다. 도상록 생산자는 이를 ‘예 정지 관리’라 설명했다.

“수삼은 그 자리에서 6년을 자랍니다. 저희 농가는 최대한 약을 쓰지 않고 기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땅이 가장 중요해요. 수삼을 심기 전에 땅에 잔류된 농약과 살충 제 등을 중화하기 위해 땅 관리만 2년을 합니다. 2년 동안 땅을 관리하고 토양잔류 농약 검사를 마친 후에 1년간 키운 묘삼을 심어요. 그렇게 5년을 더 키워 6년근이 되면 수확하죠. 6년근이 될 때까지 8년에 가까운 시간을 수삼 농사에만 공을 들여야 합니다.”
도상록 생산자는 책장에서 영농일지와 계약서를 펼쳐 보여줬다. 수삼 생산자가 손수 적은 영농일지에는 언제 어떤 관리를 했는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농가는 6년근 수삼을 출하할 때 영농일지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 되어 있다. 이밖에도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과 농약은 관행의 1/6 수준인 2~3회만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처음 서산에 왔을 때는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에 의존해 농사짓는 농가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6년을 농사지어야 수확을 할 수 있는데, 5년차에 병에 걸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잖아요. 안정적으로 수확하려면 농약을 사용해야 했죠. 삼 농사를 짓는 분들을 찾아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을 벗어나게 하는 일이 가 장 어려웠어요. 땅을 살리는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과 함께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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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홍삼으로 우직하게 만드는 홍삼액

20분 정도 떨어진 밭으로 나가 수삼이 자라는 모습을 살폈다. 수삼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작물이다. 물을 좋아하지만 습해서는 안 되고, 햇볕을 좋아하지만 직접적 으로 볕을 쐬면 안 된다.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되어야 몇 년을 잘 자랄 수 있다. 보통 4년근까지는 별탈 없이 자라다가도 5년근 때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에 걸리기도 한다. 재배가 까다로운 작물이다 보니, 수삼 생산자는 모든 날씨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산자의 정성어린 손길을 받으며 애지중지 자란 수삼은 6년차 가을에 수확한다.

수확한 수삼은 깨끗이 세척한 후, 증기로 두 번을 찐다. 한약재를 아홉 번 찌고 말린다는 옛말처럼, 오랜 시간 찌고 수분이 거의 없을 때까지 잘 말려 홍삼의 질을 높이는 데 정성을 들인다. 스테인리스 추출기와 파이프를 통해 이뤄지는 모든 공정 은 위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먹는 삼을 키우겠다고 땅을 죽이면 안 됩니다. 수삼은 한 번 자란 땅 에서는 다시 못 자라요. 그래서 6년근을 한 번 수확하면 다른 땅을 찾아야 해요. 그러니 땅에 부담을 주는 농약은 최소한으로 하고, 제초제나 화학비료는 절대 사용 하면 안 돼요. 그렇게 농사지은 수삼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건강식품이죠.”

시중에서는 여러 한약재를 섞어 홍삼 비중을 낮추고 여러 상품명으로 나누어 판매 하기도 하지만, 한살림 홍삼액은 홍삼과 물만 넣은 한 종류만 공급한다.

땅을 살려야 한다는 도상록 생산자의 철칙으로 생산한 홍삼액과 홍삼농축액. 단순히 더 좋은 원료, 뛰어난 설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에게 건강을 선사하는 건강식품인만큼 자연도 그만큼 건강해야 했다. 내 몸 하나 건강하자고 땅에 부담을 잔뜩 준다면 그게 제대로 된 건강식품이라 할 수 있을까? 건강은 다른 게 아니다. 자연과 함께 몸이 잘 순환하는 것. 땅을 살리고자 애쓰는 생산자의 노력이 담긴 홍삼액이라면 올여름도 무사히 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