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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겨울 끝자락에서 만난, 알싸하고 푸르른 달래

2019.02.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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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과 부직포가 둘러진 달래 하우스 안이 온온하다. 꽁꽁 언 땅 위로 흰 눈이 쌓인 바깥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저희가 동네에서 겨울 농사짓는 유일한 집이에요. 저희 집에 오면 한겨울에도 싱싱한 채소 반찬거리가 있어 좋아들 하세요.” 새하얀 부직포 터널 안으로 푸르게 빛나는 달래 밭을 보니 입맛이 돌았다. 봄이 오고 있다.
달래 농사의 속사정
홍천은 한살림 여름채소의 약 80%를 책임지는 생산지다. 여름에도 서늘한 고랭지 지역인 만큼, 겨울 기온 역시 낮다. 그럼에도 가온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농사짓고 있다. 자연산 달래가 4월이 넘어야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계절을 앞서가는 정성이 대단하다 .

“달래는 추위에 강한 작물이라 겨울 농한기에 소득을 내보려고 공동체 차원에서 도전하게 됐어요. 그런데 남쪽 생산지보다 추워서인지 떡잎이 많이 지고 그걸 다듬느라 잔손이 많이 가네요. 올해는 그런 걸 막아 보려고 하우스 안에 부직포를 삼중으로 쳤어요.”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근대 등 같은 하우스에서 농사짓는 열 가지 남짓한 작물 중에서도 달래는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작물이다. “다른 것들은 그냥 뚝 따면 되는데 달래는 호미로 캐는데다 떡잎도 다듬어야 하고, 뿌리까지 알뜰하게 캐려니 하루 작업량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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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에서도 달래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인건비도 많이 들지만, 무엇보다 씨앗대신 심는 종구(알뿌리)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홍천산 달래에서 미량의 농약이 검출돼, 결국 미인증 품목으로 공급하는 아픔을 겪었다.

자연을 살리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친환경농사를 지었음에도 달래의 특성과 이웃 농가로부터의 유입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고까지 막기는 어려웠다. 일단 농약이 검출되고 나면, 그동안 농부가 어떤 마음으로 작물을 대하고 어떠한 노력으로 농사지었는지는 중요치 않게 되는 현행 인증제도 하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생산자의 어려움이 피부로 다가왔다.

올해는 일반 농가 중에서도 믿을 만한 곳을 찾아 종구 를 구매하고, 친환경자재를 이용한 침종(희석) 과정을 거치고 잔류농약을 확인하는 등 생산 관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살림에서는 문제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자가 채종을 권하지만 내년 종자까지 생산하려면 두 배 면적이 필요하고, 그렇게 거둔 종구도 부패하는 경우가 많아 고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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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농사에 대한 자부심
이렇게 어렵게 키우는 달래인데, 그래서 시중 달래와 한살림 달래가 어떻게 다르냐 물으니 한참을 생각하던 김학천 생산자가 ‘재배하는 과정이 다르다’고 답했다. 달래의 맛이나 생김새에 대해 던진 질문이 부끄러워졌다.

“관행에서는 종구를 갉아먹는 병충해를 막으려고 토양 살충제를 많이 쳐요. 여기에 화학비료를 주면 짧은 시간 안에 40cm까지 쑥쑥 클 테니 시중 달래가 더 깨끗할 수밖에요.” 생긴 것만 보면 외려 시중 달래가 낫다는 얘기다. 김학천 생산자는 농산물도 눈으로 먹는 시대가 되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농사라는 것이 공산품처럼 찍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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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학천·최순희 생산자는 관행으로 오이 농사를 지었던 경험이 있다. “내가 먹고 살려면 2~3일에 한 번씩 농약을 쳐야 했는데 내 몸에 이상이 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오이를 껍질째 먹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죠.” 농약이 싫었던 부부는 결국 친환경 농사로 전향했다.

친환경 농사를 지어봤던 그이기에 한살림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남다르다. “처음에는 일반 친환경 유통업체와 거래했는데 얼마나 가져갈지 모르니 폐기한 양이 많았죠. 지금은 약속한 대로 농사짓고 또 그것을 누가 먹는지 알잖아요. 감사하다고 편지도 받고요.”

부부는 얼마 전 서석공동체의 자매결연지인 한살림서울 경인지부 김포지구의 창립 2주년 행사에도 다녀왔다며 ‘얼굴을 아는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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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최순희 생산자의 요즈음 고민은 기후변화다.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이 되니 한국 농업의 기반이 무너질까 염려하는 마음이 크다. “원래 냉이와 달래를 같이 키웠는데 냉이는 보온을 안 해도 1월부터 꽃이 피어 출하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환경이 좋아야 좋은 농산물이 자라는데 기후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한살림 농사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긍심으로 농사짓는 많은 생산자의 한 해가 부디 평탄했으면 좋겠다.

글·사진 윤연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