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삼 안성공동체 최창호 생산자와(왼쪽) 하루타 도모미 생산자(오른쪽)
12월부터 한살림 모든 유정란은 참여인증을 적용하기로 했다. 생산기준의 변화는 없지만, 생산자 공동체가 함께 양계장을 점검하고, 공동체 회의를 통해 자주관리 현황을 공유하고, 생산자, 소비자, 실무자로 구성된 자주점검단이 현장에 방문해 기준에 따라 유정란을 생산했는지 점검하게 된다.
참여인증은 한살림 자주기준에 따라 생태의 가치, 과정의 가치, 함께의 가치를 구현하는 한살림의 독자적인 품질관리 체계다. 국가 주도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은 ‘검출’을 중심으로 인증 여부를 판단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참여인증은 이런 국가 인증제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한살림의 중요한 제도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인증 과정에 참여해 물품 생산 과정을 함께 살핀다. 결과만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친환경의 개념을 더 확장하는 인증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안성 고삼공동체 최창호 생산자는 “조류독감에 예민한 양계 농장들은 외부인이 출입하는 게, 민감한 사안 중 하나”라며 말문을 열었다. “조합원들에게 생산과정이 더 투명하게 알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정란 생산자들이 다 같이 참여인증 적용에 찬성했죠.”
한살림 기준으로 유정란을 생산한다는 자부심
최창호 생산자는 청년 시절부터 양계일을 했다. 공동체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경기도 화성에 있던 야마기시즘 공동체 산안마을에 거주하며 야마기시 양계를 배웠다. 이후, 한살림 생산자였던 지인으로부터 양계장 인수를 권유받아 양계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살림 생산자가 됐다.
“대다수 양계장은 A4 용지보다 좁은 케이지에서 닭을 키우죠. 날개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24시간 인공조명이 켜진 곳에서 알을 낳는다”며 별도로 에워싸인 공간에서 알을 낳고 싶어 하는 암탉의 습성이나 먹이를 찾으며 쪼는 습성, 몸에 묻은 이물질이나 기생충을 없애는 모래 목욕도 전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달걀의 90%는 스트레스 속에서 낳은 달걀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축산법 시행령이 2018년 9월 1일, 개정됨에 따라 산란계 사육 면적은 마리당 0.05㎡에서 0.075㎡로 확대됐다. 7년의 유예기간을 받아 2025년 8월 31일까지 개선된 케이지로 전환해야 한다. “유럽은 배터리 케이지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데, 국내에선 생산량 감소와 비용증가로 달걀값이 오를 거라며 볼멘소리를 해요.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현실이에요” 최창호 생산자는 개선되지 않는 양계 산업의 현실에 안타까워 하면서, 본인이 오랜시간 지켜온 야마기시 양계 방식과 한살림 생산기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항생제 없이도 닭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비결
한살림 유정란 생산기준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계사 환경, 먹이, 사육밀도, 암수탉의 비율까지, 효율과 비용만 생각해 좁은 케이지에서 키우는 대다수 농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산안마을에서 수년간 지켜온 기준이라 어렵지는 않았어요. 한살림 생산자가 아니었어도 저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닭을 키웠을 거예요.”
최창호 생산자의 계사는 햇볕이 잘 들어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개방형 구조, 계사 1평당 닭 16마리 정도가 지내고 있어 닭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바닥엔 톱밥을 깔려 있어 모래 목욕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톱밥은 닭의 배설물이 발효와 분해가 잘 돼 냄새가 덜 난다. 닭들이 항생제 없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하는 습성을 고려한 횃대와 유정란을 낳을 수 있는 산란 상자가 구분되어있다. 이 모든 환경은 한살림 유정란 생산지라면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환경이다.
풀사료를 먹여 더 튼튼하게
좋은 유정란은 건강하게 자란 닭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닭을 건강하게 키우려는 노력은 병아리 때부터 시작한다. 일반 농가들이 90일 정도 된 중병아리를 들여와 키우는 것과 달리, 한살림 양계 농가들은 부화한 지 1~2일 정도 된 병아리부터 직접 키운다. 현미와 신선한 풀 사료를 먹으며 자라 소화기관이 튼튼해지고 건강한 닭으로 자란다. 짧은 기간이어도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병아리부터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최창호 생산자가 말했다.
한살림 양계 농장은 풀 사료가 의무다. “풀 사료는 닭의 소화기관을 자극해 건강하게 해줘요. 배합사료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영양분을 보충해주죠. 또 달걀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색을 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돼요.” 최창호 생산자는 닭이 풀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파헤치고 쪼는 행위를 통해 스트레스가 줄어 동물복지에도 큰 역할을 한다며 풀 사료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 풀 사료를 주기 위해 계사로 들어가고 있는 최창호 생산자
좋은 유정란의 비결, 세심한 관찰로부터
“닭은 4살 어린아이 정도 지능이 있어요. 사람도 구별할 수 있고요. 개도 구분하죠. 주인 목소리도 알아요. 처음 보는 사람은 경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친숙하게 느끼죠.” 최창호 생산자는 닭은 지능이 있는 동물이기에 주변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닭을 만족시키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닭의 습성을 이해하고 습성대로 살 수 있게 도와줘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죠. 그래서 저는 관찰을 많이 해요. 서열에서 밀려 밥을 잘 못 먹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면 따로 분리해 관리하죠.” 건강한 유정란은 껍질이 단단하고 깨뜨렸을 때, 색이 선명하고 퍼지지 않고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며 달걀의 상태를 보면 어떻게 자라고 있는 닭인지 금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금이 가거나 상태가 안좋은 유정란을 골라내는 모습
결과보다 과정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
“외부에서 인증을 받을 때, 심사원 눈을 피하는 건 쉬워요. 하지만, 공동체 동료의 눈은 피할 수 없죠. 참여인증은 결과보다 과정을 서로 살펴보는 인증이잖아요. 이것만큼 신뢰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참여인증 확대를 통해서 유정란을 낳는 닭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는지, 생산자들이 이런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과정을 봐주시면 좋겠어요. 조합원들의 신뢰가 있어야 생산자들은 더 좋은 물품을 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