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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국내산 잡곡을 먹는 건, 나 자신과 우리를 위한 일

2023.12.19 (화)

조회수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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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DMZ 생명공동체 계신일 생산자

인생 첫 농사를 맛보고 일찌감치 농부의 길로
제 인생 첫 농사 경험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학교 앞 병아리 장수에게 병아리 15마리를 사서 키웠어요. 아마 제가 마지막 손님이어서 남은 걸 다 팔았던 것 같아요. 병아리가 많다 보니 먹이 주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동네에서 모종을 얻어다 텃밭을 시작했어요. 텃밭에서 키운 작물로 병아리 먹이를 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엉뚱한 계기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농사에 관심이 생겼어요. 농사를 지으면 닭에게 먹이를 줄 수 있다는 것, 어린 나이에 뭔가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 이런 게 농사의 매력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이후 농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농업대학을 거쳐 농부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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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 DMZ생명공동체 계신일 생산자
척박해도 잘 자라는 수수
수수는 쌀농사가 흉년일 때, 대신 먹던 작물이에요. 벼농사가 잘 안되면 중간에라도 심어서 얼른 수확해 먹을 수 있는 대체 작물로 활용해 왔어요. 잡곡이 대부분 그렇죠. 이건 바꿔 말하면 자라는 속도가 빠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기후가 썩 좋지 않아도 대체로 잘 자란다는 뜻이에요. 잡곡 품종은 대부분 환경에 적응을 잘하거든요.
병충해도 친환경제제로 방제하면 대부분 해결이 되는데, 노린재는 도망갔다 다시 돌아와요. 그래서 노린재 피해로 애를 좀 먹었죠. 공동체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수수밭 외곽에 끈끈이 트랩을 만들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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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종을 옮겨 심은 직후의 수수밭
쭉정이 없이 알차게 여물었어요
최근 몇 년간 장마철에 집중호우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올해도 비가 많이 올 거로 예상해 대비를 좀 했어요. 수수를 심기 전에 배수로 작업을 꼼꼼하게 했죠. 수수 심는 면적은 좀 줄었지만, 비 피해를 보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올해 비가 꽤 많이 왔는데, 배수 작업을 잘해 둔 덕분에 큰 피해가 없었어요. 올해 노린재 피해가 없어 작년보다 생산량이 조금 더 늘었고 쭉정이 없이 알차게 여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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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만든 끈끈이 트랩에 노린재가 붙은 모습
오랫동안 우리 땅에서 자란 잡곡, 더 많이 사랑해 주세요
밥을 지을 때 잡곡을 섞는 게, 영양분도 다양하고 다이어트나 성인병, 당뇨병에도 좋다고 하잖아요. 잡곡만큼 가성비가 좋은 건강식품이 없다고 생각해요. 몇 해 전 퀴노아가 슈퍼푸드라며 인기를 끌었어요, 너도나도 먼 나라에서 자라는 퀴노아를 사다 먹었죠. TV에도 많이 나오고요. 국내산 잡곡도 품질이나 영양이 퀴노아에 견줘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데, 사람들이 오랫동안 우리 땅에서 자란 잡곡보다 퀴노아에 관심을 두니 참 씁쓸하더라고요.
그래서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국내산 잡곡을 먹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니겠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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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쭉정이 없이 알차게 여문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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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한 수수를 탈곡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