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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밥을 먹어야 세상이 돌아가잖아요”

2023.11.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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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생산자연합회 정선섭 생산자의 50년 유기 벼농사 이야기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이제 그 밥의 자리를 빵과 고기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대신한다. 통계에 따르면 1970년대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136kg으로 육류소비량은 5kg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쌀 소비는 57kg으로 50년 사이에 60%가 줄었다. 반면 육류 소비는 54kg으로 이제 고기를 쌀만큼이나 많이 먹는다. 쌀은 소비감소로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식생활 추세에도 묵묵히 쌀농사를 짓고 매해 더 연구하며 자신만의 농사 세계를 만들어 가는 농부가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농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산연합회는 한살림 대표적인 쌀 생산지로 오래전 갯벌이었던 비옥한 간척지에서 쌀을 키워 미질과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오십 년을 한결같이 유기재배로 우리 쌀을 짓고 있는 정선섭 생산자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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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생산자연합회 정선섭 생산자
친환경 농사로 맺은 한살림과의 인연
영농일지에 고스란히 담긴 농사 연구


오래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벼농사를 시작했고 농사를 처음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친환경 농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어느 날 농협에서 본 잡지에서 ‘한살림농산’이란 곳에서 유기농산물을 구한다는 글을 보았단다. ‘농약 안 친 쌀을 갖고 있다’고 한살림에 전화했더니 며칠 뒤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때가 박재일 선생과의 첫 만남이었다. 86년도 일이다.
정 생산자는 빼곡히 적힌 영농일지를 보여주며 말한다.
“오리농법 시작할 때 어린 오리를 풀어 저체온증으로 폐사하기도 하고, 발효농법 한다고 논에 감주(식혜)를 왕창 뿌렸는데 잡초가 우후죽순으로 자라서 크게 고생했던 일도 있었어요. 논에 김매는데 그 해에만 400여명을 썼어요”
그의 입에서는 그간 겪었던 여러 시행착오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당시에는 유기농을 하는 이가 드물어 배우고 싶어도 배우기가 어려웠단다. 몇십 년째 쓰고 있는 영농일지에 그의 농사 연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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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섭 생산자의 영농일지
50년 차 농부에게 낯선 지금의 날씨와 농사
계속 연구하는 수밖에요


유기재배 벼농사를 앞장서 온 그이기에 한살림 논학교 교장으로, 수도작 분과장으로 농법을 전수했다. (물을 대는 벼농사를 수도작이라고 하는데 수도작 작목모임은 연구모임이다. 1년 동안 농사 작황에 대한 평가도 하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같이 평가하고 비교한다.) 10여 년 전부터 무투입농법을 실험하고 있다. ‘무투입’은 말 그대로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가하지 않는 농법이다. 모내기 후 바로 거름을 주지 않고 모가 어느 정도 자라 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기다렸다 거름을 준다. 거름은 수확 후 나온 볏짚으로 준다.
“자연 그대로 스스로 자라고 열매 맺게 하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짓다 보니 자연의 생명력을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그를 일러 ‘땅의사’라고도 한다. 그런 그이지만 자연의 힘은 거스를 수 없다고 한다.
“올해도 작황이 썩 좋지 않아요. 겉보기엔 멀쩡해도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속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올봄 냉해와 여름 폭우 때문이다. 이상기후로 농사짓기가 점점 힘들어지기에 기후와 토양에 맞게 계속 연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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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이삭을 살피는 정선섭 생산자의 손
"밥 네다섯 그릇씩 먹으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아
다만 어디서 누가 농사 지은 것인지 알고 먹었으면"


식생활 변화로 점점 쌀 소비가 줄어드는데 정 생산자는 어떤 생각인지 물었다.
“요즘 쌀이 남아돈다고 하죠. 그렇다고 하루에 밥을 네다섯 공기씩 먹으라고 할 순 없잖아요. 다만 그 쌀을 먹을 때 이게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면 좋겠어요”
“한살림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 관계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이 통해서 소비자가 늘고 다시 생산량도 늘고... 그게 한살림의 밑바탕이 된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한 소비자와 만나는 장이라면 언제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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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를 앞둔 논을 살피는 정선섭 생산자
50년 농사 외길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짓겠지"


“비행기는 뭐로 떠요?” 대뜸 퀴즈를 하나 내신다.
“기름으로 뜬다, 날개로 뜬다고들 하겠지만 나는 밥으로 뜬다고 생각해요. 밥을 먹어야 조종사가 기운이 나서 운전을 할 거 아니에요”
밥을 먹어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말이다.
“쌀이 기본 식량이고 생명이잖아요”
반백 년 유기농사를 고집해 온 농부의 삶에서 길어 올려진 말이다.
“농사짓기 힘들어 다들 안 하면 어떻게 돼요? 국제적으로 산불 홍수 가뭄으로 식량이 난리잖아요. 우크라이나 전쟁도 남의 일이 아니고... 그러니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이거는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살아가는 동안 건강하게 오래오래 농사짓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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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식량독립만세' 캠페인 깃발을 흔들며 미소짓는 정선섭 생산자
한결같이 우리 땅을 지켜온 농부의 존재로 오늘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한다. 한편으로 이제 그다음을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해야 할 때. 쌀은 다른 식량에 비해 자급률이 높지만, 마냥 행복한 상황은 아니다. 값싼 수입고기와 수입 밀이 쌀의 자리를 대신한다. 식생활의 변화를 억지로 막을 수야 없지만 쌀 소비가 줄어 점점 벼농사를 더 이상 짓지 않게 될 때 수십 년을 가꿔온 유기 농지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무형의 보물 같은 이 땅에서 어떻게 다음 농사를 이어갈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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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생산자연합회 인주지회 생산자들과 함께. 2001년에 꾸려진 인주지회는 약 14만 평 땅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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