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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쓰러진 벼를 세우는 일

2023.10.04 (수)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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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 5편

추수를 앞둔 9월,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불어 벼가 많이 쓰러졌습니다. 아니, 거의 다 쓰러졌습니다. 쓰러진 벼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했어요. 농사라는 게 잘 되는 해가 있고 잘 안되는 해가 있다는 걸 알지만, 올해는 유난히 아쉽습니다. 충북의 토종 쌀 품종을 심은 첫해이기도 하고 한살림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농사를 지은 터라 기대감이 좀 컸는데, 수확량이 많이 줄어 들 거 같아 아쉬움이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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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여물지 못한채 쓰러져버린 나기창 생산자의 벼
비바람에 쓰러진 벼
도복이 심한 논은 수확량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쓰러진 벼가 땅에 닿으면 수분 때문에 부패하거나 낱알에서 싹이 나기도 합니다. 미질도 떨어지죠. 빠르게 벼를 일으켜 묶어 세우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2~3일간 비가 내렸고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부담되는 작업이라 계속 망설이고 있었죠.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쓰러진 벼를 살펴보았습니다. 백석 품종은 만생종이라 아직 덜 여물어서 일찍 베어버릴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농사짓는 한살림 친구들을 긴급 소집했습니다. 살릴 수 있는 벼는 최대한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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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쓰러진 벼
쓰러진 벼를 세우는 일
아침 일찍 모여서 만들어 오신 주먹밥과 김치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다음 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벼 4~5포기를 사각형으로 세워서 중심을 잡은 다음 벼의 2/3 지점에 벼 줄기를 끈 삼아 묶어야 하는 일인데, 초보자가 하기에는 어렵고 낯선 일입니다. 사실 저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어떤 어르신 논에서 벼 세우는 일을 도왔는데, ‘니가 그러고도 농부냐!’ 라고 핀잔을 들을 정도로 이상하게 손에 잘 안 익더라고요. 결과물이 볼품은 없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벼를 세워 묶으며 마무리했습니다. 벼가 많이 쓰러져서 속상하지만, 저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분들과 함께한다는 기쁨 때문에 맘껏 웃을 수 있었습니다. 새삼 한살림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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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벼를 세우는 한살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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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벼를 세우는 한살림 친구들
경제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친환경 농사
경제 논리로 따지면 참 쓸데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품과 정성을 들여 수확해도 제값을 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좋은 가격으로 판매해 인건비라도 건지면 다행이지만, 쌀소비가 점점 줄어 남아도는 상황이다 보니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농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제 기준에서 벼 생산비를 계산해 보면 마지기(200평)당 순이익이 55~60만 원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올해 제 논에서는 최소 1200만 원을 벌어야 하는데... 아마 무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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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벼를 묶어 세워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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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 투성이가 된 한살림 친구의 발
경제 논리로 친환경 농업을 바라본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입니다. 농지를 보존하고 토종종자를 보존하는 것, 이런 가치를 알아주고 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농사를 짓습니다. 쌀 적체로 인해 한살림 또한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슬기롭게 극복할거라 믿으며, 10월 추수를 재밌게 해보자 다짐합니다.
글/사진 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는 11월 추수 때까지, 매월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