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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기후위기 온 몸으로 맞으며 농사짓고 있어요

2023.09.22 (금)

조회수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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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햇살아래공동체 한동섭 생산자

올해로 농사지은 지 벌써 47년이 됐어요. 다른 일 모르고 평생 농사만 지었지요. 한살림 생산자로는 28년 됐는데, 그 전엔 관행 농사를 지었어요. 배 크기도 키우고 모양도 잘 만들어서 외국으로 수출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우리농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는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짓자고 이야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른바 친환경 농사에 눈을 뜬 거죠. 취지도 너무 좋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생각해 친환경 농사로 전환했어요. 그 과정에서 한살림을 알게 됐고 주변 권유로 한살림 생산자까지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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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햇살아래공동체 한동섭 생산자와 아들 한성완 생산자
한살림과 함께 일궈낸 친환경 농사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약 사용을 절반가량 줄이니까 농사짓는 게 배로 어려웠어요. 수확량도 많이 줄고 색도 모양새도 변변치 않았죠. 이게 맞는 건가 싶었는데,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줬어요. 그래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짓는 법을 많이 연구했어요. 먼저 친환경을 시작한 선배들도 고생을 많이 하며 도와주었고요. 볼품이 없어서 판매가 어려운 배들은 한살림에서 가공용으로 받아주었죠. 그렇게 모두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친환경 농사를 짓게 됐고 지금은 모두 참여인증 기준으로 농사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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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섭 생산자의 배 밭
아들까지 대를 지어 한살림 농사짓고 있지요
제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과수 농사를 짓고 있어요. 제가 가꾸던 사과밭을 이어받아 농사짓고 있어요. 농부들 마음은 대게 비슷할 것 같은데, 아들에게 농사 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농사일이 원체 힘드니까요. 그런데 제 농사를 혼자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렇게 애써가며 한살림 농지로 가꿔놨는데, 지켜온 원칙과 가치에 맞게 이 과수원을 가꿔줄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들에게 권유를 했어요. 당시에 아들은 유학을 다녀와서 외국에서 살고 싶어 했는데, 제 설득에 넘어갔죠. 그렇게 벌써 9년 차 한살림 농부로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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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해와 우박, 폭염과 장마를 이겨내고 자라난 배
농사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 기후위기
배는 4월~5월에 꽃이 피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죠. 보통 4~5개 정도 열매를 맺어요. 그중 가장 실한 놈만 남기고 다 잘라줍니다. 그걸 적과라고 불러요. 적과를 꼼꼼하게 해줘야 배가 굵어지고 맛도 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적과를 할 게 거의 없었어요. 봄에 찾아온 냉해 때문에 꽃이 덜 피었고 그나마 맺힌 열매도 말라 죽어버렸어요. 남아 있던 배들은 또 이후에 우박을 맞았고요. 지금 남아있는 배들을 잘 키워낸다고 해도 생산량이 평소에 1/4 정도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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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생산량이 줄어버린 한동섭 생산자의 배나무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견딘 대견한 배
조합원들에게 선보일 배는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버틴 열매들이에요. 냉해와 우박, 폭우와 폭염을 다 이긴 대견한 녀석들이죠. 그래서 그런지, 남은 녀석들은 여느 때보다 맛이 잘 들었어요. 과육도 치밀하고 과즙도 달고요. 생산량이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지만, 그나마 그걸 위안 삼으려고 해요. 몇 년 전부터 계속 기후위기라는 말을 들었는데, 큰 위협이라고 생각진 못했어요. 그런데 한 2~3년 전부턴, 날씨가 조금씩 애를 먹이더라고요. 그래서 일기예보를 더 자주 보면서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서리가 안 오는 시기에 서리가 내리고, 비가 많이 올 시기가 아닌데 비가 많이 왔어요. 시설을 갖추고 대응하려고 해도, 영 힘들더라고요. 올해는 제 농사 인생 중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해요. 힘들고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새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