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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40년 미나리 농사 외길, 제 이름걸고 짓습니다

2023.09.12 (화)

조회수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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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공동체 함병요 생산자

대학교 2학년 때, 부모님 농사를 돕다가 처음으로 미나리 농사를 지어봤어요. 그땐 미나리 농가가 많지 않아 흔치 않은 작물이었죠. 제 농사를 시작할 때, 이왕 농사짓는 거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나리를 선택했죠. 이왕이면 ‘미나리’ 하면 ‘함병요’라는 제 이름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작물은 쳐다보지도 않고 미나리만 팠죠. 그렇게 40년째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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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더 좋은 미나리를 키우려고 연구를 거듭하며 농사짓는 함병요 생산자
친환경 농사에 처음 눈을 뜨다
90년대 들어서, 친환경 농사라는 개념이 조금씩 생겼어요. 그땐 농사를 지으면 농약과 화학비료는 당연히 사용하는 거였어요. 친환경 농사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걸 사용하지 말자, 우리 몸과 땅에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는 거예요. 그땐 그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죠. 근데, 듣다 보니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당장 시도해 볼 순 없었죠. 누가 사주나 싶은 걱정도 있었고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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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과 같이 물이 차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미나리
한살림 조합원을 만나려고 오래 준비했죠
세월이 흘러 한참 뒤에야 한살림을 알게 됐어요. 오랫동안 친환경, 유기농에 진심인 곳이라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어요. 무작정 한살림 사무실로 찾아가 실무자와 이야기를 나눴죠. 이후 한살림에 매력을 느껴 미나리를 공급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3년에 걸쳐 필지를 점검했고 한살림에 관해 공부했죠. 물품을 이용하며 조합원을 알기 위해 노력했어요. 조합원은 어떤 걸 원하는지, 많이 고민하고 찾아봤어요.
당시 인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한살림 기준에 맞는 미나리를 키우기엔 인천이 여건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유기 농사하기 좋은 땅을 찾아 다녔죠. 그렇게 만난 곳이 이곳 진천이에요. 물이 깨끗하고 토양이 좋아 미나리에도 좋은 환경이었고요. 건물도 새로 짓고 작업장도 새로 마련했어요. 전국 미나리 농장 중에 시설로는 뒤지지 않게 시설을 갖췄죠. 그렇게 긴 준비시간 끝에 조합원 여러분께 제 미나리를 선보일 수 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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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미나리
어르고 달래며 키우는 예민한 작물
미나리는 참 신기한 작물이에요. 물가나 물속에 자생 하는 식물인데,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어디서든 잘 자라죠. 그런데, 키우다 보면 이렇게 예민한 작물이 있나 싶어요. 온도 습도에 참 예민해요. 요즘 날씨는 미나리 키우기에 참 힘들어요. 따뜻해져야 할 봄날에 갑자기 냉해가 온다던가, 비가 한참을 오다가 폭염이 길게 이어지곤 하니까요.
미나리는 20~23도 정도의 날씨에서 잘 자라는데, 조금 덥거나 조금만 추워도 성장을 멈춰요. 우리는 잠을 잔다고 표현하는데,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보호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미나리가 잠을 자기 시작하면,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예전에는 억지로 키워보려고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미나리가 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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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한 미나리를 깨끗하게 세척하는 모습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어요
미나리가 죽으면 무척 속상해요. 그러면 가서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키우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돌아보죠. 죽은 미나리를 뽑아 먹어보기도 하고 토양과 뿌리를 점사해서 원인을 알아보려고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요.
저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한자로 풀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그대로의 상태’ 이런 말이잖아요. 무엇이든 스스로 변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변화하는 날씨를 제힘으로 바꿀 수 없잖아요. 미나리가 이런 환경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게 기다려 주고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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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원에게 전달할 미나리를 정성스레 포장하는 모습
이 맛에 한살림 합니다
올해는 잠든 미나리가 꽤 많았어요. 장마 후에 길게 이어진 폭염 때문에 잘 자라지 못했어요. 작년에 비해 수확량이 40% 정도 줄어들었어요. 품질이 좀 들쭉날쭉하고 모양새가 좀 아쉬워요. 미나리 농사에 40년을 쏟았는데, 매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사도 힘들고 미나리가 보기 싫어질 때도 있죠.
한번은 한살림 조합원에게 전화가 왔어요. 나이가 지긋이 든 분이었는데, 미나리에서 거머리가 나왔다고 연락을 주신 거예요. 화를 내실까 싶었는데,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깨끗하게 키웠다는 증거 아니겠냐며요. 그 전화 한 통에 큰 힘을 얻었어요. 농사가 힘들고 싫은 마음이 씻은 듯 내려갔죠. 애써 농사지은 보람이 있구나, 다른 농부들도 이 맛에 한살림 하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