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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오방색 찬란한 매력, 토종쌀 농사를 짓는 이유입니다

2023.09.04 (월)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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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 4편

지역마다 품종마다 다르지만, 벼꽃이 피는 기간은 열흘 이내입니다. 피어 있는 시간이 짧고, 크기도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벼에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죠. 벼꽃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쁩니다. 이삭에서 벼꽃이 나오는 것을 출수라고 하는데 가녀린 상태로 출수한 벼꽃이 점점 제 색깔을 찾아가고 올망졸망 피어 바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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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꽃 구경을 왔다가 한 컷, 찰칵
토종벼를 자연 농법으로 키워야 하는 이유
출수기에는 벼의 생육상태나 논물 수위를 살펴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논에 물이 자박자박하게 있는지, 벼가 시들 거리 지는 않는지, 병은 없는지 살핍니다. 들쭉날쭉한 날씨에 걱정이 산더미인데, 요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까지. 영 달갑지 않습니다. 벼가 쓰러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올해는 백석, 비단찰, 용정찰, 족제비찰, 옥천돼지찰 이렇게 5종을 심었는데 벌써 한 부분이 쓰러졌습니다. 벼가 쓰러지는 일은 농부에게 정말 큰 스트레스입니다. 토종벼는 키가 커서 볍씨가 많이 달리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쉽게 쓰러집니다. 농부들이 토종벼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농부는 맛이 좋고 수확량이 좋은 벼를 심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토종벼는 생산량을 늘리려고 비료를 주면, 벼가 쓰러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토종벼를 키우는 선배 농부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자연순환 농법을 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도 선배 농부들의 농법을 따라 자연 순환 농사를 짓는데, 매년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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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락을 입은 이삭과 하얗게 핀 벼꽃(왼쪽 사진) 토종벼와(좌) 개량벼의(우) 키 차이(오른쪽 사진)
오방색 다채로운 토종벼의 매력
그런데도 토종벼 농사를 짓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벼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종벼는 품종마다 고유의 색감이 있습니다. 수확기가 되면 오방색 다채로운 색감으로 논을 물들입니다. 붉은메, 북흑조, 백경조, 녹토미 같은 토종벼는 이런 색감으로부터 이름을 지은 겁니다. 개량된 벼에서 볼 수 없는 까락을 입은 이삭과 벼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아름답습니다. 맛 또한 다양합니다. 사람 입맛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토종벼는 품종마다 고유의 향이 다르고 밥알의 크기, 당도, 찰짐도 제각각이라 밥 문화를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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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히 제 빛깔을 보여주고 있는 토종벼
토종벼 종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
올해 제게 5가지 품종을 건네주신 윤성희 소장님 말씀처럼, 우리나라 토종 찰벼는 전 세계 어떤 쌀과 비교해도 훌륭하고 충분한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산적 가치도 빼놓을 수 없죠. 저는 괴산 지역에서 재배되었던 메벼 백석, 청주 용정동에서 재배되었던 용정찰, 옥천지역의 돼지찰, 청주 지역 문헌에 나온 족제비찰과 비단찰을 선택했는데요. 오랜 시간 특정 지역에서 적응하며 살아온 종자를 지키려는 노력, 이것 또한 제가 토종벼 농사를 이어가는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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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갈색 빛의 용정찰
올해 심은 토종벼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수확기에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아침 쓰러져 있는 벼를 보면서 마음이 속상했는데, 글을 쓰면서 토종벼를 심기로 했던 마음을 되새기고 나니 속상한 마음이 자연히 치유되네요. 내일은 논 안에 들어가 벼를 세우려고 합니다. 태풍으로 인해 취소되었던 피사리 일정을 벼 세우는 일정으로 대신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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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쓰러져버린 토종벼
글/사진 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는 11월 추수 때까지, 매월 연재합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