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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햇밀장, 우리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2023.08.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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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밀밭의 전경
햇밀 수확은 5월 말부터 장마 전까지 초여름에 이루어진다. 집집마다 밀을 거두고 동네 밀방앗간에서 고운 밀가루를 언니들이 이고 지고 오는 모습은 올해 팔순이 되신 엄마를 지금도  미소짓게 하는 행복한 추억이다. 하얗게 부풀어 올라 폭신한 술빵, 수제비, 칼국수는 보릿고개를 건너온 이들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먹거리였을 것이다. 
몇 해 전 찾아뵈었던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농부 1호를 자처하시는 풍양의 전병철농부님 댁에서 밀개떡을 맛볼 수 있었다. 갓 수확한 햇밀을 디딜방아에 찧고 체에 쳐서 가루 내리기를 반복하는데 끝까지 체에 남은 밀기울을 반죽해서 가마솥에 붙여 구어낸 투박한 음식이 이 마을의 밀개떡이었다. 이 시절의 밀은 버릴 것이 하나없는 그런 곡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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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호밀밭
2016년 첫 햇밀장을 열였다. 세상의 모든 밀이 햇밀이던 순간이 없었겠냐만은 모든 밀이 햇밀이라고 불릴 수는 없다. 내가 발딛고 사는 땅에서 자라난 밀이라야 언제 수확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말은 농부를 안다는 말과 같다. 마르쉐 친구들은 햇밀을 만나기 위해 여러 지역의 소규모 밀농가들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구례, 고흥, 보성, 장흥에서 하동, 진주, 사천, 함양으로. 청주, 괴산에서 홍성, 논산, 익산으로. 또 파주, 양평, 강화에서 예천, 의성, 김천, 군위로 이렇게 방방곡곡의 밀밭을 찾아다니면서 깨달았다. 논과 밭이 모두 초록을 잃는 계절에 초록 밀싹을 틔워 올리고 세상의 모든 것이 초록인 계절에 황금 들녘을 만들어내는 밀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곡우’, ‘그루’ 같은 이름도 예쁜 호밀들이 큰키로 낭창낭창 흔들릴 때의 우아함, 검정밀의 검붉은 까락이 바람에 날릴 때의 웅장함. 콤바인으로 수확을 마친 밀밭의 향긋함, 제분기에서 보드랍게 흩뿌려져 내려오는 밀의 그 뽀얀 밀의 따뜻함… 식량안보, 농약으로부터의 안전성, 토양피복 및 대기정화 효과 등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 땅의 밀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밀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들이었다.
국민 1명이 1년에 먹는 밀가루는 35kg나 된다.  그 밀의  99%를 수입밀에 의존하면서 우리는 밀에 대한 경험을 잃었다. 자연스럽게 밀에 대한 감수성까지 사라졌다. 대공장에서 생산되어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썩지 않고 영생하는 밀가루는 우리에게 식품으로 감각되지 않는다. 밀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해야 이 밀이 지켜질 수 있겠다 싶었다. 밀농사가 좋아 돈이 되지 않는 작은 밀농사를 이어가는 농부들이 살아남고 이 밀로 빵을 만들고 국수를 만드는 작업자들이 동네마다 자리잡고 살아가려면 국산밀에 대한 소비자들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고 농부와 작업자들의 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햇밀장이다. 소비자가 농부를 만나고 요리사들이 올해의 밀을 만나고, 또 소비자들이 다양한 햇밀을 맛보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시작되어 매년 8월 두 번째 일요일에 열리고 올해로 8년째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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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3일에 열린 여덟번째 햇밀장
지난 8월 13일 마르쉐는 올해의 햇밀장을 마쳤다. 햇밀장 전에 12종의 올해의 밀을 선정해서 80여 명의 요리사들이 올해의 밀을 사용해 볼 수 있게 했다. 사전 워크숍으로 ‘참밀의 이해’라는 워크숍이 열렸고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토종밀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나누었다. 또 하나의 워크숍은 ‘내 취향의 밀국수 찾기’로 제면사와 요리사가 힘을 합친 기획이 펼쳐졌다.
햇밀장 당일에는 10여명의 밀농부와 제분소, 60여명의 햇밀작업자, 그리고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들까지 100여팀이 참여하는 시장을 열었다. ‘밀의 맛’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시장에는 햇밀로 만든 다양한 빵과 과자, 각종 국수와 젤라또와 맥주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소개됐다. 다양한 밀을 소개하는 전시와 워크숍도 진행됐다. ‘밀의 맛, 맛의 말’ 워크숍에서는 올해의 12가지 통밀을 소비자들이 맛보고 그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250여 명의 손님들이 햇밀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7명의 베이커들의 밀과 발효에 대한 생각을 담은 전시도 진행됐다. 밀농부들과 홈베이커가 대화하고 음식기획자와 국산밀로 면작업을 하는 한식, 양식 요리사가 함께한 대화가 워크숍으로 펼쳐졌다. 국산밀로 농가 맥주를 만드는 농부와 국산맥주효모를 만드는 작업자, 요리사가 함께 펼친 대화도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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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3일에 열린 햇밀장에서 농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무엇보다 이번 햇밀장에서 뜻깊었던 것은 한살림이 이번 햇밀장의 파트너로 함께 한 것이다. 한살림은 이날 시장에서 ‘대한식량독립만세’ 캠페인을 진행해서 많은 마르쉐의 손님들을 식량주권 운동에 초대했고 또 마르쉐의 농부와 요리사들에게 한살림의 밀에 대한 구상과 생각을 전했다. 이번 햇밀장을 열고 닫으며 우리밀 운동의 최전선에 서서 30년을 넘게 달려온 대선배 ‘한살림’의 격려에 용기를 얻었고 국산밀과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고 밀의 재지역화를 위해 함께 갈 벗이 존재가 감사했다. 함께 가니 더 멀리 갈 수 있겠다. 

글 이보은 마르쉐친구들
*‘마르쉐@’는 ‘장터, 시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마르쉐(marché)에 장소 앞에 붙는 전치사 at(@)을 더해 지은 이름으로, 어디에서든 열릴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2012년 10월 첫 장을 연 마르쉐는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