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영역 바로가기 컨텐츠 영역 바로가기 하단 영역 바로가기
  1. 한살림이야기

힘겨운 농사일 속 작은 위로

2023.08.16 (수)

조회수
735
공유하기
1
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 3편

벼는 물만 있으면 잘 자랍니다. 거의 전 생육 기간 동안 물이 필요하죠. 그런 벼에 물을 빼줘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중간 물떼기라고 하는데, 벼가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하고 웃자람을 막기 위함입니다. 중간 물떼기 시기는 농부마다 다르게 정하지만 보통 이삭패기(어린 이삭이 끝 잎에서 빠져나오는 일) 전 40일부터 30일 사이에 논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올해 7월엔 사람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물떼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뿌리가 물에 계속 잠겨 있으면 깊게 내리지 못할거고, 빈 이삭이 많이 웃자랄것이라서 생산량이 좀 줄어들 거라 예상합니다.
2
▲토종벼가 자라고 있는 논
농부의 숙명
이번 장마 때문에 청주 인근 한살림 농가들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둑이 무너진 미호천 주변 농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상황입니다. 저는 일부 논이 물이 잠겼고 토종 쌀이 자라고 있는 논 가장자리에 토사가 쓸려 내려오는 아찔한 상황이 있었지만,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자연은 신비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말 무섭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를 넘어서 기후 종말이라는 말이 너무나 공감되는 7월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것도 농부의 숙명이겠죠. 비가 그치고 난 뒤엔 계속 논둑의 풀을 깎았습니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겐, 반복되는 일상일 테죠.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매일 새벽 5시부터 오전 9시까지 풀을 벱니다. 이 일이 사실 가장 힘들고 지루한 일입니다.
4
▲비가 많이와 물이 빠지지 않은 논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 위로가 되는 논생물
반복되는 지루한 과정에서 저를 위로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논에 사는 생물인데요. 풀을 베다 마주치는 논둑의 작은 생물들은 만나면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과거에는 논 생태계에 기반하여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논둑 생물은 제거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작물의 수확량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논은 사람이 만든 인공습지이고 겉으로 봐서는 어떤 생물도 살지 않을 것 같지만, 논에는 크고 작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그런 생물과 공존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때 힘들고 지루하던 일은 가치 있고 즐거운 일로 바뀝니다. 한살림 생산자이기에 깨달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죠.
6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논둑
다가올 가혹한 미래
기후 위기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논생물들과 저에게 더 가혹한 시간일 겁니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기는 참 힘든 것 같습니다. 폭우가 쏟아진 뒤, 이삭거름을 주기 위해 논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토종벼가 맞이할 폭염과 태풍 모두 잘 견뎌 화려한 벼꽃을 피우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사진 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는 11월 추수 때까지, 매월 연재합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8
9
▲벼 사이에 슬그머니 앉아 쉬는 실잠자리(위)와 메뚜기(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