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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지구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더 늦어서는 안됩니다

2020.02.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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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3월호(630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인간의 힘은 지구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졌지만, 그에 따른 위기를 통제할 만큼 충분히 거대해지지는 못했다. 아니 비대해진 힘에 비해 그것을 제어할 의지나 그에 걸맞은 실천이 턱없이 빈곤하다는 것이 더 적절한 해석일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처럼 지구를 약탈하는 방식으로는 성장은커녕 곧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70년대 중반. 이후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직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과 인간이 자연환경을 언제까지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막막한 상황에서 붙잡고 나아갈 작은 단초라도 얻고자 환경운동 1세대로 오랫동안 기후위기 대응에 매진한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엄혹했던 1980년대. 학생과 노동자, 농민과 지식인이 총집결해 군사정권에 맞서던 그 때에 민주화운동과는 다소 결이 다른 운동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1986년 한살림을 탄생시킨 원주캠프의 생명운동 진영이 그랬고, 지금의 환경운동으로 발전한 반공해운동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안병옥 위원장은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 기자 등과 더불어 환경운동 1세대로 꼽힌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이공계 대학가 일각에서 싹튼 이른바 ‘과학기술운동’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자연과학도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을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던 끝에 과학기술이 낳은 여러 문제점들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공해의 정치경제학>, <내 땅이 죽어간다> 등 환경 관련 도서를 함께 읽으며 환경문제가 노동이나 농민문제만큼이나 뿌리가 깊고 범위도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환경운동에 평생 매진해도 좋겠다고 마음먹었죠.”

환경운동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에서 응용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 연구원으로 활동한 그는 귀국해 다시 환경운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까지 지내며 다양한 환경문제를 다루던 그는 기후위기 문제에 좀더 집중하기 위해 기후변화행동연구소를 만들었다. “전 세계에서 시민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직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한국 사회 내의 실천은 너무 미약했어요. 연구소지만 이름에 ‘행동’을 넣은 것도 그 때문이었죠.”

이후 그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환경부 차관을 역임했다. 1년 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터지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등 여러 사건을 거치며 환경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늘었다. 그러나 안병옥 위원장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의식수준의 변화가 아직도 늦되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문제를 바라보는 호흡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에요. 독특한 역사 속에서 근대화를 이루어서이기도 하고, 대통령 5년 단임제라 중장기적인 대비가 부족한 면도 있죠. 그런데 조금만 긴 호흡으로 살펴보면 기후위기만큼 절실하고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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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이 늦었습니다

“이 농사 언제까지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해가 다르게 농사 환경이 나빠져서.” 한살림 생산자들을 만날 때면 심심찮게 듣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해 한살림 생산지는 이상고온과 잦은 태풍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자연에 기대어 살지 않는 사람들로서는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냉정하게 보면 호주산불과 같은 재난들은 과거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강도도 점점 세지는 데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죠. 기후위기는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 보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까’의 관점으로 봐야 해요. 기후위기는 어느 수준까지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급격한 형태로 나타나거든요. 그 순간에는 인간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기후위기를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지구 자체가 인간이 빚어낸 기후위기의 충격을 완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충격이 지구의 복원력을 넘어설 경우 지금의 평형 상태는 급격히 깨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바다가 90% 이상의 열을 흡수하고 있는데 수온이 점차 올라가고 있어 그것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낮은 수온을 유지하고, 빛 반사율이 높은 빙하가 녹을수록 그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당장 가치관과 행동을 바꾸더라도 지금까지 쌓인 요인들 때문에 기후위기는 한동안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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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가 희망입니다

미래를 긍정하는 이들 중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으리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안병옥 위원장은 모든 것들이 연결된 지구공동체 특성상 과학을 통한 섣부른 시도가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주에 큰 거울을 설치해서 태양에너지를 반사하자거나 바다에 철분을 뿌려 늘어난 플랑크톤으로 하여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하자는 등 지구공학에 기반한 여러 기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실험실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지구 전체에서 그런 실험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해결책으로 보고 있지 않아요.”

대안은 있을까? 해답은 오히려 간단한 데 있다. 온실가스 발생량이 너무 많아서 벌어진 일이니만큼 근본적인 원인을 줄이는 것이다. 이에 그는 재생에너지의 활성화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흔히 말하는 ‘탈원전’보다는 ‘에너지 전환’ 측면으로 봐야 해요. 원자력만이 아니라 석탄, 천연가스 등 지구에 부담을 주는 에너지원의 비중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태양광 발전만 하더라도 기술이 발전하며 6~7년 전에 비해 효율이 두 배로 좋아졌으니 장기적으로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죠.”

이어 그는 에너지 전환 문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정치·경제논리에 휘말려 있는 점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에너지 전환을 두고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이나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공격을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재생에너지로의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거든요. 신규투자만 봐도 그래요 이미 원자력과 석탄 등 기존 에너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재생에너지가 두 배 정도고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요. 나라별 여건과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따라 에너지 전환 속도를 다르게 가져갈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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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생산자가 되어주세요

한살림은 올해 핵심의제 중 하나로 ‘기후위기 대응 및 자원순환운동’을 꼽았다. 실제로 한살림은 먹을거리의 국가 간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발생을 최소화하고, 재사용병과 공급상자를 재사용하며, 안성물류센터와 가공생산지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세우는 등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안병옥 위원장은 한살림 조합원들에게 “재생에너지 생산자로 적극 나설 것”을 요청했다.

“한살림 조합원은 소비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땅과 농업을 살리는 생산자이기도 하잖아요. 에너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될 수 있어요. 독일은 보수와 진보 상관없이 에너지 전환을 주요 정책으로 삼고 있어요. 재생에너지 설비의 절반 가까이를 시민이 투자했거나 직접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죠.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요. 마을 단위로 투자하여 풍력발전기 한 대를 세우고 그 수익을 다시 마을 발전에 쓴다든지, 태양광발전 회사에 펀드 형식으로 투자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살림 같은 큰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이 함께 마음 모아 재생에너지 생산에 힘써주시면 좋겠어요. 또,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해요. 과잉 소비하는 만큼 넘치게 생산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에너지 전환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밖에 지구 생태계 전체의 존립을 위해 일하는 지자체장, 기업인들,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겠죠.”

미래는 우리의 작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제는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고 묻기보다는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가?”를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답을 찾고 행동해도 어쩔 수 없는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