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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동상동몽의 가족, 한살림

2018.12.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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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조합원으로 거의 30년을 살았다. 몇 번을 곱씹어봐도 바른 먹거리나 환경에 대한 뚜렷한 생각 없이 살던 평범한 세 아이의 엄마가 한살림을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한살림과 만난 이후 내 삶은 조금씩 한살림에 젖어 들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 준비하던 저녁상에서 농업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보고 있었다. ‘아하! 이래서 밥상살림이 곧 농업살림이고 생명살림이라는 거구나’ 싶었다. 생각이 자라는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새로 깨친 것을 이웃과 나누는 방법을 매 순간 궁리했다.
성당 앞에서 소식지를 나눠주고, 무농약 오이를 들고 나가 등산로 앞에서 시식행사도 했다.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를 큰길이나 아파트 마당에서 나누기도 하고, 여름 휴가철 붐비는 서울역과 버스 터미널에서 비누 샘플과 함께 ‘하천을 보호하자’는 전단지도 돌렸다. 전철도 그냥 타지 않았다. 소식지를 몇 부씩 가방에 넣고 다니며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각종 모임에서도 늘 한살림 이야기를 하다가 ‘계속 그러면 모임에서 제명한다’는 으름장을 듣기도 했다. 반상회 때도 자청해서 한살림물품을 대접하며 ‘맛있다’고 하는 이들을 포섭하느라 정성을 쏟았다. 홍보장터에 나가 가입설명을 하다가 “가입해주면 너에게 얼마가 떨어지냐”며 눈물을 글썽이던 친구도 생각난다. 그때는 그 일이 왜 그리 재미있고 훈장 같았는지.

같이 활동하던 이들을 만나면 우리가 왜, 무슨 기운으로 그렇게 힘껏 한살림 전도에 나섰는지 이야기한다. 사람과 자연이, 소비자와 생산자가, 너와 내가 남이 아니라는 생각. 오늘 내가 차리는 밥상이 우리 아이들이 자기의 아이를 위해 차릴 수 있는 밥상까지 결정한다는 깨달음. 소비자의 생명은 생산자가, 생산자의 생활은 소비자가 책임지겠다는 다짐. 도시에 살아도 내 생각과 생활이 생산지에 가 닿는다면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이렇게 한살림을 넓혀 나가면 언젠가는 온 나라가 한살림 세상이 되고, 한살림이 더는 특별하지 않아 마침내 사라지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 내가 한살림이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생산자와 조합원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이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동네 조합원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할 만큼 한살림이 커졌다. 커진 만큼 밀도가 옅어진 것일까. 한살림을 대하는 요즘 조합원들의 마음이 이전 조합원들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모두가 그때 같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 아닐까. 식구가 모여 밥 한 끼 같이 먹기도 어렵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는 바쁜 일상에서 한살림과 깊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한살림 조합원임에도 물품만 이용한다’며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물품을 이용하다 보면 차츰 물품 너머의 생산자가 보이고, 우리 농업현실에 눈이 뜨이고,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혼자라면 엄두조차 내기 어렵지만, 같은 고민과 실천을 일찍부터 해 온 이들이 한살림에는 차고 넘친다. 학교급식운동, 수돗물불소화반대운동 등 한살림이 이룬 모든 일은 모여서 함께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사가 잦았던 내가 늘 도움을 받았듯 한살림매장에 가면 유익한 정보가 있고, 언제나 문이 열려있는 소모임·마을모임이 있다. 같은 생각과 취미를 가진 조합원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의기투합할 이웃을 만날 수도 있다.

함께해서 즐겁고, 없던 힘도 생기는 공간,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흐르는 시냇물을 마시고 가로수의 사과를 따 먹는 행복한 꿈을 같이 꾸자. 그래서 땅이 주는 모든 선물을 가리지 않고 감사하며 먹을 수 있는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조합원, 한살림의 주인이 되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바로 한살림이다.


윤선주 한살림연수원 원장
글을 쓴 윤선주님은 한살림 안에서 자신의 성장경험을 새로운 사람들과 나누기 좋아하는 오래된 조합원입니다. 첫 쌀값결정회의 참석 후 ‘죽는 날까지 한살림을 한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궁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