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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이철수 화백

2018.07.21 (토)

조회수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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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작업실, 벽마다 걸린 그의 작품들과 듬성듬성 놓인 작업 도구가 눈길을 흩어내는 일상의 공간에서 이 시대 어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하는 내내 수더분한 웃음이 가신 적이 없지만, 내놓는 말들은 마디마다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바탕을 돌아보게 만든다. 마치 그의 그림처럼.
2
“너 자신을 들여다봐.”
그림이 야단쳤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차분하면서도 준엄하게. 2,000점이 훌쩍 넘는다는 그의 작품들은 예외없이 짧은 글과 그림을 함께 품고 있다. 담백한 그림체와 어우러진 단순한 글이 삶의 틈새를 묵직하게 비집고 들어왔다
서로를 만드는 관계
“내가 잘못 살면 그림이 야단치는 것 같아요.” 장일순, 이현주, 권정생, 이오덕… 시대의 스승들과 젊은 시절부터 함께한 그는 자기가 잘 살지 못하면 못난 자신을 ‘끼워준’ 어른들로부터 꾸지람 듣는 것 같다며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글과 그림을 함께 담는 독특한 작업방식 덕에 그린 그림의 수만큼이나 많은 메시지를 남긴 이철수 화백. 자신의 작품이지만, 이제는 곁에서 그를 지켜주는 글과 그림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자신을 성찰하고 들여다보라는 말을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었어요. 일종의 마음공부인 셈인데 특별한 것은 아니에요. 사느라고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잘못 놓인 발이 있으면 다시 바로 걸으려 애쓰는 것, 그 이상 없어요.”

그는 ‘돈’이 종교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계량되고, 돈이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이에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온통 상처받은 짐승처럼 살고 있어요. 머리만 쓰다듬어도 울 준비가 되어 있고, 잘못 건드리면 죽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죠. 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초라하다고 여기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같은 생명
이철수 화백은 1987년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로 내려왔다. 귀농하면서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니 농사경력이 30년이 훌쩍 넘었다. 군부독재에 거친 판화로 대항하던 젊은 민중화가는 이제 조각칼만큼이나 호미를 쥔 손이 잘 어울리는 진짜배기 농부가 되었다. 몸을 낮추고 작은 생명에 눈 맞추다 보니 자연이 주는 깨달음도 전해 받았다.

“밭둑에는 민들레가 참 많아요. 민들레가 솜털 씨를 날릴 때쯤 꽃대가 눈에 보일 만큼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거든요. 작은 생명이 스스로를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바람을 기다려서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이 참 경이롭죠. 그뿐인가요? 밭 안에 뿌리내리고 있어서 매번 잡초와 함께 베이는 민들레도 있어요. 수시로 베임 당하던 민들레는 시들기 전, 낮은 꽃대에서 죽기 살기로 솜털 씨를 흩어요. 제때 꽃대를 한두 뼘씩 밀어 올린 민들레나 그렇지 못한 민들레나 모두 생명의 내재율에 따라 온 힘을 다해 제 몫의 삶을 완성해낸 것이잖아요. 조건이 달랐던 것뿐이지, 생명의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그리 대했으면 좋겠어요. 조건만 갖춰지면 사람도 자연처럼 열매를 맺고 씨를 날리는 존재니까요.”
작은 이에게 손 내미는 한살림
이철수 화백은 한살림 설립 초기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한살림의 어른이다. 식일완만사지(食一碗萬事知 : 밥 한 그릇을 먹으며 만사의 이치를 깨달음)의 의미를 담은 그의 작품 <밥한그릇>은 한살림의 초창기 로고로 쓰였고, 밥상 위에 수저 하나가 놓인 형태의 두 번째 로고도 그가 디자인했다. 한살림운동을 시작한 이들과도 밀접하게 지내며 한살림의 첫 마음을 누구보다 깊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작은 존재들도 품는 한살림’이 될 것을 강조했다.

“한살림의 가치를 자신의 삶에 내면화해서 사는 이들도 물론 있겠죠. 하지만 한살림 안에 있다고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잖아요. 대부분은 별다른 고민 없이 건강한 먹거리를 선택하기 위해 들어왔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배춧값이 폭등했을 때 상대적으로 싸다는 이유로 한살림에 들어왔을 거예요. 그런데 배추 싸게 먹으려는 게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물론 본인은 어느 순간 부끄러울 수도 있겠죠. 부끄러움을 느끼면 안 부끄러워지고 싶을 것이고, 한살림에서 어디에 서 있어야 덜 부끄러울지 고민할 수도 있겠죠. 그처럼 늦되지만 자기 고민을 딛고 큰 존재들은 알아서 또 다른 미숙한 것들에게 손 내밀 거예요. 그 모
두가 더 큰 한살림이 되는 거고요. 일단 한살림에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거죠.”
목판화로 일가를 이룬 그임에도 제자를 따로 둔 적은 없다. 배우고자 찾아온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판화를 배우며 삶을 바꾸고자 온 이들을 설득해 돌려보낸 것이 벌써 여러 번이다. “손기술만 익힌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세상을 보는 눈, 존재나 사물과 관계하는 마음가짐 등이 먼저인데 그것은 꼭 제 밑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스스로 잘 사는 것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철수 화백. 하지만 단순히 그림에 국한하지 말고 그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얻어간 사람 모두를 제자라 부를 수 있다면 그의 그림과 말을 통해 삶이 바뀐 제자는 부지기수가 아닐까.
오늘도 그의 그림이 말을 건넨다.

“이봐. 네 마음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있어?”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