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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어렵고 힘든 토종쌀 농사, 사람과 정 때문에 짓습니다

2023.11.17 (금)

조회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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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 6편

올해는 벼농사 짓기 참 힘든 해였습니다. 모내기할 땐 벼 싹이 잘 틔우지 않아서 애를 먹었고 오락가락한 날씨에 벼가 다 쓰러지기까지 했죠. 그 때문에 매일 매일 걱정 속에 하루를 보냈습니다. 농사가 잘되는 해가 있다면 잘 안되는 해가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잘 알지만, 올해는 함께 농사를 짓기로 한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더욱 걱정됐습니다. 소출이 너무 적어 실망하실까 봐요. 날씨는 끝까지 도와주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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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바람에 쓰러진 토종벼
토종쌀 농사, 함께 짓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10월 초부터 중순까지 비가 적지 않게 내려 벼 베는 시기를 미뤄야만 했습니다. 함께 농사짓는 친구들과 11월 21일을 추수 날짜로 잡았는데, 예정된 비로 인해 부득이 하루 전날 추수해야 했습니다. 쓰러진 벼를 베는 것은 서 있는 벼를 베는 것보다 두 배 이상 힘듭니다. 바닥에 깔린 벼를 일으켜 세우려다 보면 땅을 파거나 벼가 체여서 기계가 멈추기도 하는데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밀려오는 짜증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내가 이걸 왜 하지?’하고 체념 섞인 말도 튀어나오니까요. 참 다행인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수확량이 많이 나왔습니다. 현미로 도정했는데 250kg이 나왔으니까요. 물론 일반 벼농사의 소출량에 비하면 반밖에 안 되지만, 다 쓰러진 논 치고는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농사지은 친구들 11명이 현미 20kg씩 가져갈 수 있었어요.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좀 더 계획적으로 했다면, 좀 더 부지런했다면. 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함께 농사지은 친구들은 수확량에 개의치 말고 내년에 한 번 더 해보자며 내년 가을걷이 때 함께 토종쌀을 팔아보자고 웃으면서 격려해 주었는데, 정말 고마웠습니다. 어렵고 힘든 토종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관계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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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가 끝난 논
논의 힘으로 살아온 삶
제가 귀농을 결심한 데엔 벼농사의 영향이 컸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한 20대 중반, 아버지를 따라 추수를 도왔습니다. 그게 제 첫 농사 경험입니다. 보름 동안 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수확한 벼를 담고 수매를 도왔습니다. 수매처에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시는 동네 어르신들, 40kg 마대에 담긴 벼를 쏟아 붓는 농협 직원들, 1등급 2등급에 울고 웃는 농민들. 그런 풍경 하나하나가 좋았습니다. 다음날 들어온 돈으로 빚부터 갚는 아버님을 보며, 어쩌면 나는 이 논의 힘으로 살아 왔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이후 쌀 가격이 떨어지고 논농사로는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친환경 밭농사로 전향 했지만, 여전히 논농사는 제게 떨어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일상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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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마다 생김이 다른 토종벼
토종쌀 농사를 확장하기엔 아직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과 추억이 있고 중요한 일상이 되었기에, 토종쌀 농사를 멈추지 않고 계속 짓겠지요. 오늘은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며, 내년에도 ‘힘내자’고 스스로 지지와 격려를 해야겠습니다.

「나기창 생산자가 지난 1년 동안 토종쌀 농사 짓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추수를 끝으로 나기창 생산자 연재글은 마무리를 짓습니다. 토종쌀 농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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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쌀로 지은 밥
글/사진 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