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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통밀에 담긴 이야기

2023.08.30 (수)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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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통밀 원곡
마이크로바이옴 열풍이 불고 있다. 각종 염증은 물론이고 비만과 우울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장내미생물, 너도나도 유산균을 챙긴다. 덩달아 섬유질이 많다는 호밀, 귀리가 주목받고 홀푸드인 통밀도 그냥 밀이 아니라 카무트, 스펠트 같이 오래된 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지난해 햇밀장을 <지금, 밀>이라는 테마로 열면서 기후, 식량, 건강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먹어야 하는 밀은 바로 ‘통밀’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밀에서 불과 3%밖에 차지하지 않는 씨눈(배아)에 밀이 함유한 단백질의 50%, 지방의 77%, 섬유질의 23%, 철분과 오메가3, B5 등의 영양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밀기울 또는 과피라 불리우는 껍질은 밀의 15-20%를 구성하지만 단백질의 35%, 지방의 23%, 섬유질의 70%, 철분의 58%... 이 외에도 다양한 비타민과 효소성분을 담뿍 함유하고 있다. 원곡밀을 백밀가루로 제분하면 수율이 55-70% 정도니까 (제분소마다 다르다) 어떤 백밀가루를 먹어도 우리가 탄수화물 외에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은 거의 없다. 그럼 이 영양덩어리 밀기울과 씨눈은 어디로 가는가? 일부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사료나 퇴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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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약아틀라스> 한국어판
그럼 그냥 통밀이면  되는 것일까? 지난 7월 독일의 하인리히뵐재단 Heinrich Böll Stiftung 의 지구환경보고서 <농약아틀라스> 한국어판이 발행되었다. 이 보고서를 통해서 글리포세이트와 관련한 유럽연합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글리포세이트는 사실 옥수수, 밀, 보리 등의 재배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초제 성분이다. 그만큼 논쟁도 많다. 학계의 독립연구 72건 중 70% 이상의 연구가 글리포세이트가 DNA 손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물론 기업연구는 전혀 다르다). 인간과 동물의 신경계 영향을 미쳐 꿀벌군집붕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고 파킨슨이나 ADHD, 호르몬교란, 태아기형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도 한다. 
2015년 국제암연구소는 글리포세이트활성성분을 ‘인체발암추정물질’로 결론을 냈다. 논쟁 끝에 유럽연합은 당초 10년의 승인허가기간을 반으로 줄였고 22년 한 해 연장해서 올해 12월 허가기간 종료가 예정되어 있다. 재승인 여부를 올 7월까지는 결론을 내기로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유야무야 지리한 논쟁을 끌어가며 글로벌화학기업들의 로비가 다시 먹히고 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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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에 담긴 영양성분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글리포레이트 잔류 허용 기준치는 어떻게 될까? 쌀은 0.05ppm, 밀은 그 100배가 많은 5ppm이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식약처 관계자가 우리쌀에 적용하는 허용치를 수입밀에 적용하면 거의 모든 밀이 수입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무역 분쟁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답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럼 잔류허용기준치 5ppm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미에서는 수확 직전에 건조를 빨리 해서 수확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목적으로 밀과 귀리, 보리 등에 글리포세이트를 살포하는 프리하베스트(pre_harvest)가 만연해 있다. 우리나라의 잔류허용기준치에는 수입밀에 대한 배려가 넘치게 담겨 있다.
국민 1인당 하루 한 끼는 수입밀을 먹는다(물론 국산밀이 1-2% 생산되지만 그나마도 소비처를 못 찾아 창고에 쌓여 있는 것을 감안하면 수입밀을 먹는다는 표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 빵과 과자를 먹는다면 글리포세이트에 관대한 북미산 밀을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들의 불안에 대해 식품과 유통업계는 밀은 껍질을 모두 벗기고 제분과정에서 40% 이상을 버리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한편에서 유산균과 각종 유기곡물에서 추출했다는 효소나 섬유질, 단백질쉐이크를 판매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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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햇밀장에 함께한 빵굽는 외과의사 임재양 원장님
지난해 햇밀장에 함께한 빵굽는 외과의사 임재양 원장님은 우리 몸에 좋은 것을 챙기기보다 안 좋은 것을 넣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다. 평생 암을 치료하면서 얻은 그의 결론이다. 다행인 것은 이땅에서 자라는 밀은 대부분 겨울에 자란다는 것이다. 다른 풀이 나오기 전에 밀이 자리를 잡는다. 덕분에 국산밀은 제초제, 살충제 없이 친환경으로 기르는 곳이 많고 관행 재배도 그 사용량이 미미하다. 모내기와 장마를 피해 빨리 수확해서 건조기에 넣는 경우가 많아 프리 하베스트가 필요 없는 농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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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밭 전경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면 대다수 소비자들의 입맛은 더 달고 부드럽고 씹을 것이 없는 먹거리를 쫓고 통밀을 외면하는 게 다행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먹거리 문화가 수입밀을 지속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취향을 생각하는 소비자, 또 건강과 자연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출현하면서 밀기울과 배아를 담뿍 담은 거친 통밀빵을 찾는 이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매끄러움은 덜하지만 투박한 국수, 거친 표면으로 양념의 맛을 꽉 붙잡는 면발에 매료된 소비자들도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국산밀로 만들어 더 신선하고 안심되는 먹거리들이다. 

이땅에서 나온 밀로도 풍요로운 미식생활이 가능하도록 선택지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지구를 위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도무지 돌이킬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나쁜 일들이 계속되는 이 세계에서. 

글 이보은 마르쉐친구들
*‘마르쉐@’는 ‘장터, 시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마르쉐(marché)에 장소 앞에 붙는 전치사 at(@)을 더해 지은 이름으로, 어디에서든 열릴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2012년 10월 첫 장을 연 마르쉐는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