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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일구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서로 돌봄

2023.08.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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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폭염에 실 한오라기 같은 바람조차 아쉬워 창문을 한껏 열어 놓으니 바깥 나무에서 맴맴 매미 소리가 앞다투듯 집안으로 들려 옵니다. 7월 말과 8월 초 두 차례 다녀온 폭우 피해 생산지 일손돕기 때 견뎌냈던 뜨거움이 그새 딴 세상 이야기만 같습니다. 8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어도 생산지는 폭우가 주었던 위기감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습니다. 폭우가 휩쓸고 간 피해가 너무나 커서 앞날을 걱정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급박한 일들이 많았고 과연 복구될 수 있는 건지,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을지 예측도 하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7월 28일 저녁에 앞서 일손나누기를 시작한 농산물위원회 위원분들과 합류하기 위해 서둘러서 괴산으로 갔습니다. 오전에 도착한 위원분들은 하우스 안에서 오후까지 물에 잠겼던 옥수수 작업을 했는데 물품으로 못 나가고 사료로 갈 옥수수의 껍질을 까고 분류 작업을 하며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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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피해를 당한 옥수수 중 사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고르는 모습
7월 29일 일손돕기는 아침 7시부터 여름에 제일 힘들다는 콩밭 풀 뽑기부터 시작했습니다. 20대 청년 생산자 밭은 모두 물에 잠겨 못쓰게 되었고 유일하게 폭우 피해가 없는 콩밭이었습니다. 오전 작업 후 점심을 먹고 더위를 피해 쉬다가 오후 4시 이후부터는 고추 따기를 했습니다. 고추 하우스도 천장까지 물에 잠겼던 터라 주렁주렁 달린 고추는 흙을 뒤집어쓴 채 물을 잔뜩 먹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저녁 7시가 넘어도 하우스에 계속 머물렀지만, 자루는 전혀 차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생산자분들은 폭우 피해로 손실이 너무 커 매우 힘드실 텐데도 ”조합원이 있어 다시 힘을 내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셔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7월 30일에는 더위를 피해 새벽 5시에 밭으로 가 오전 9시 넘어 콩밭 김매기를 끝냈습니다. 콩보다 키가 큰 풀을 뽑고 나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듯하여 뿌듯했고 무성하게 콩꼬투리가 달린 콩밭을 상상하니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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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에서 풀 뽑을 뽑는 모습
8월 2일에는 아침 일찍 한살림서서울생협 식구들과 청주 미호천공동체로 길을 나섰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토마토 줄기 제거 작업을 하였는데 하우스 2동이 폭우로 뿌리가 썩어 들어가 철거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하우스 2동에서는 토마토 수확 작업을 하긴 하였지만 한줄기에서 ‘물품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것은 2개를 겨우 골라 담을 수 있었습니다. 폭우로 물을 잔뜩 먹은 토마토는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가고 있었습니다.
’생산자분이 얼마나 많은 땀으로 농사를 지었을까‘라는 생각보다 당장 딸 게 없는 상황에 눈물이 앞섰습니다. 토마토가 소비자에게 닿기도 전에 모두 버려야 하는 상황을 생산자님은 어떻게 감당하고 계실까 생각해 보려고 해도 그 마음을 제가 알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폭우가 쓸고 간 처참한 현장을 보는 만으로도 힘겨웠고,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농부가 있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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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겼던 하우스에서 토마토 줄기 제거 작업을 하는 모습
마음만큼은 큰일을 하고자 하는 각오로 갔었는데 돌아보니 오히려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다 온 것 같습니다. 현장 복구 작업을 하는 조합원과 생산자들을 위해 먹거리를 챙겨 새벽길을 달려 온 한살림 식구들과 농사 경험이 적은 도시 조합원들이 일손나누기를 하다가 더위라도 먹을까 살뜰히 챙겨주신 괴산연합회 실무자분들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일손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게 돌보는 손길로 먹고 살아가고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함이 컸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듯 터전을 꿋꿋이 지키시는 생산자님께 오히려 힘을 받으며 자그마한 손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습니다.

생산지 일손나누기를 연중으로 계속 이어가면 어떨까, 폭염과 폭우 없이 기후가 안정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지구의 뜨거움을 나누어 쪼갤 방법이 없을까요. 무엇이든 나누어 함께 하는 것이 앞으로 함께 갈아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업의 위기를 몸으로 공감하며 더 가까이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게 절실히 필요한 때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서로 돌봄을 경험하고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연결감의 경험을 끊임없이 엮어가며 희망을 함께 지키고 싶습니다.
글, 사진 | 한살림서서울 농산물위원회 김태수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