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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인터뷰] 한 끼 정성스럽게, 오늘 하루 충실하게

2023.05.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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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매일의 좋은 삶을 만들고, 사회와 잘 관계하고, 자연과 조화하는 행위인 한 끼란? 한살림의 오랜 조합원이기도 한 자연요리연구가 문성희 씨에게 좋은 삶을 만드는 ‘한 끼’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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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자연요리연구가 문성희 씨
자연요리연구가 문성희 소개
문성희 씨(74)는 현재 경북 청도에서 딸 김솔 씨와 함께 ‘피스풀테이블’을 운영하며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요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평화가 깃든 밥상>(2013),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2013), <문성희의 밥과 숨>(2018), <전통 채식 밥상>(2021) 등이 있습니다.
좋은 재료로 단순하게 요리하는 것이 최고의 한 끼
“재료가 신선하고 좋으면, 요리는 간단할수록 고급이지요.”
문성희 씨는 자신의 요리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20여 년간 요리학원을 운영하며 한식 중식 등 온갖 요리를 다 해봤지만 결국 가장 좋은 한 끼는 최고 좋은 재료를 골라서 가장 적게 요리하는 것이란다. 화려함이 아니라 재료의 신선함과 요리의 단순함이 그녀가 이야기하는 ‘고급’ 이다.

“처음에 텃밭을 할 때 밭에서 풋고추나 오이를 따서 된장 찍어 먹으면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근데 점점 된장에 안 찍는 게 더 맛있더라고요. 된장 향도 그 재료의 향을 가리는 거예요. 텃밭을 해서 신선한 재료를 얻으면 가장 좋지요. 그게 어려우면 농부와 직거래를 하거나, 한살림 같은 직거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거죠”
식재료의 중요성을 알기에 자신의 요리 수업을 듣는 이들에게 직거래나 한살림 같은 생협 이용을 적극 권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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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재료를 다듬고 있는 모습
좋은 먹거리를 만들고 이용하는 좋은 관계
“그리고 좋은 식재료를 골라 구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식재료가 어떻게 재배되어 우리 앞에 오는지 알아야 해요. 바쁜 일상에 사회에 관심을 갖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세상의 먹거리도 더 건강해져요. 조합원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개념이잖아요.”
"음식을 소비재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먹거리를 이용하는 우리가 소비자가 아닌 ‘공동 생산자’가 되어야 해요."
평온한 마음으로 요리하면 음식도 더 맛있어
“요리를 하는데 정리 정돈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공간이 정돈되고 질서가 잡혀야 요리하는 마음도 평온해지죠. 그래야 음식이 맛있어요.”
손맛이라는 것도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평온하고 즐거울 때 나오기 때문에 요리하는 환경을 항상 정돈한다.

무념무상 식재료 다듬기
“저는 재료 다듬는 걸 엄청 즐겨요. 단순 노동이니까 하염없이 마음이 차분해지죠. 뭔가를 할 때 여기저기 떠다니는 마음을, 지금 여기 내가 하는 일에 갖다 놓으면 피로감이 훨씬 덜해요. 그러면 그 일에 몰입하게 되니 속도도 굉장히 빨라지죠. 요리에 집중하면 그게 바로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채소를 잘 다듬어야 그 다음 일이 반 이상 줄어든다고 덧붙인다. 요리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다듬기를 제대로 안 해 놓으면 나중에 일이 몇 배로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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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인터뷰 중에 미소짓고 있는 문성희 씨
매일의 한 끼가 결국 자기 자신이기에
“땅에 떨어진 씨앗이 생명이 되고, 전혀 다른 모양으로 음식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와서 세포를 형성합니다.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는 말이 사실이잖아요. 먹는 것으로 내 몸을 만들어질 때 그게 마음과 의식에 영향을 끼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먹는가가 중요해요”

간단하게라도 포기하지 말고 요리해요
"도시에서 직장 다니고 바쁘게 살면서 먹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이긴 어렵죠. 하지만 내가 이만큼은 양보하고 이만큼은 지켜나간다. 이렇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요즘 직장인 혼밥도 많이 먹잖아요. 현실적으로 매번 요리하기가 참 힘들잖아요. 그럴 때 좋은 재료를 구해 일주일 식단을 미리 짜서 하루에 몰아서 손질해서 냉장보관 할 수도 있고, 일주일치 요리를 미리 해두고 냉동 보관해서 한 끼씩 꺼내먹을 수 있죠. 각자 자신의 조건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는 거죠. “
어떻게 먹을 것인가는 곧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건강하게 먹지 못한다고 자책하거나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기에, 생각에 휘둘리기보다 내면의 힘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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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문성희 씨의 평범한 한 끼 밥상
자기를 돌보는 마음을 잃지 않기
경북 청도에서 열고 있는 문성희 씨의 요리 수업을 듣고자 서울, 부산 등 여러 도시에서 찾아온다. 그 중에 30,40대 여성들이 많다.
“이 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같이 만든 음식에 행복해진다고 해요. 정갈하고 자연스러운 요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바쁜 일상에 틈을 내어 이곳 청도까지 와서 자기를 돌보는 법을 배운다. 돌아가서는 자기가 해 먹은 밥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온다. 문성희 씨는 그렇게 도시로 돌아가서도 자기를 돌보는 마음을 잃지 않고 일상에서 실천해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단다. 평온하게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는 결국 가장 중요한 돌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기회를 갖고 무언가를 해볼 수 있어야 해요. 요즘 사람들은 정보를 접하고 처리하는 양도 엄청 많잖아요. 경험하는 폭도 우리 세대보다 훨씬 다양하죠. 저도 요리 작업을 딸과 함께 하는데 딸 덕분에 제 요리가 좀더 젊은 감각으로 업그레이드 돼요. 이를테면 플레이팅 같은 것은 딸이 훨씬 감각적으로 잘 하거든요. 그래야 제 요리도 지금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거잖아요.”
피스풀테이블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딸과 함께 작업하고 있고 그것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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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피스풀테이블을 함께 운영하는 딸 김솔 씨와 함께
지금 한 끼 정성스럽게 오늘 하루 충실하게
요리연구가 문성희의 평범한 한 끼는 어떤 모습일까 물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침은 주로 샐러드를 먹어요. 제철 채소와 과일 위에 쪄서 말린 곡식 가루를 살짝 뿌리고 간장, 조청, 감식초를 섞어 얹힙니다. 가을부터 봄은 날이 춥기 때문에 채소 스튜나 채소 죽처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걸로 먹죠. 점심은 좀 풍성하게 먹어요. 3시 이전에 점심 식사를 끝내고 저녁은 먹지 않아요. 몸에 굉장히 좋더라고요. “
점심에 마음껏 먹으면 저녁을 먹지 않아도 참거나 하는 느낌이 없단다. 대신 저녁에 매일 같이 산책을 한다. 걸으면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고 머리 속 생각도 정리된단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에 하나이다. 먹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꼭꼭 씹고 소화해서 내 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성스럽고 충실하게 보내는 문성희의 삶의 태도는 먹는 것 뿐 아니라, 하루 일상에 그대로 담겨있다.
한 끼는 곧 우리를 살리는 행위
"한살림 정신은 곧 살리는 활동이잖아요. 땅에 떨어진 씨앗이 생명이 되고, 전혀 다른 모양으로 음식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와서 세포를 형성합니다. 먹는 걸로 내 몸을 살리고, 생산하는 분을 살리고, 우리 땅을 살리는 거잖아요. 우리 삶에서 아주 기본, 본질을 이루는 부분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해요. 건강한 먹거리로 몸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린다. 사실은 이런 한살림의 정신이라는 게 굉장히 본질적인 거잖아요."
소박한 한 끼로 자연과 조화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내는 그의 모습에서 충만한 삶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