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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생산자 입장에서 보는 원전 오염수 방류

2023.05.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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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민 한살림 가공생산자 ((주)해농수산부산지점 관리부장)

※본 토론문은 지난 4월 19일(수) ‘한살림’이 공동주최하고 ‘건강과대안’이 주관한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및 수산물 수입 재개의 숨은 쟁점과 민중건강 토론회’에서 발표된 한살림가공생산자 최지민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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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장 겪고 있는 불편함은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와 요구에 따른 방사능 검사 비용의 지출입니다. 이는 건강한 먹거리를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우리가 응당 치를 수밖에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비용을 치르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란 자못 망설여지는 게 사실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지엽적이고 생산자적인 관점이라고 비난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재 치르고 있는, 나아가 추가로 치러야만 할 이러한 비용의 누적은 비단 생산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로 인한 단가 상승은 고스란히 수십, 수백0만의 조합원들에게 대물림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점점 가중되는 가계 경제에 대한 부담도 모자라 이제 자신 또는 가족의 생명을 담보하지 않고는 수산물을 먹을 수 없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을 감히 섭취하려 할 것인지 저로서도 의문입니다.
최초의 원전 사태가 자연재해로 인한 우발적이고 비의도적인 사건이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사태 수습 과정은 결코 우연과 자연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반드시 정무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이 뒤따르는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의 국제 사회를 볼모로 한 가미카제식 방침에 따라 그와 가장 근접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몸과 마음속에는 방사성 물질만이 아니라 먹거리, 특히나 수산물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불만이 농축될 우려가 있습니다. 값싼 처리를 위해 원전 오염수를 인류의 시원이자 젖줄인 바다에 흘려버림으로써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근 국가들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수산물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만연해진다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태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그러한 불신이 점차 만성화 혹은 내면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원전 오염수 방류는 앞으로 30년 내지 40년 동안이나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소비자들은 작게는 소금에서부터 크게는 저 생명의 모태였던 바다에 대해 근원적인 불안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간 건강한 먹거리로 인식돼 왔던 수산물을 더는 건강한 먹거리가 아닌 불안한 먹거리, 혹은 불량한 먹거리라고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
최근 불거진 GMO 호박, 일명 주키니 호박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국가의 검사망을 뚫고 만에 하나라도 기준치 이상의 수산물이 국내로 유입되어 문제가 불거진다면 그때마다 전국의 수산업자들은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마저도 결국 하나둘 바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한살림과 함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자 노력해 온 한 생산자로서 크고 작은 식품 안전사고를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간의 식품 안전사고는 문제가 발생한 제품이나 원인을 연역적으로 개선 또는 제거해 나가면 대부분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예컨대, 금속과 같은 물리적 위해요소가 발견된 제품이라면 해당 제품을 수거 혹은 폐기하거나, 식중독균과 같은 화학적 위해요소가 발견된 제품이라면 그 제품을 취급한 사업장의 위생관리 시스템 전반을 개선해 나가는 식입니다. 그런데 만약 일본의 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버려지고, 방사성 물질이 축적된 수산물로 인해 식품 안전사고가 불거진다면 이에 대한 개선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한단 말입니까.
수산업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고, 그중 하나는 더 잦은 방사능 검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믿음을 심어주면 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 과학이 만능인 이 시대에 참으로 과학적인 방법론 중의 하나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의 맹점은 아시다시피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수백, 수천만 마리의 수산물 중 극히 일부분만으로 그것의 검출 유/무, 적합/부적합 여부를 판단한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방사능 검사 비용의 누적에 관한 것과는 별개로 국내산 또는 국내로 들어오는 모든 수산물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표본 검사에서는 방사능이 불검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나머지 중에서 방사능이 불검출될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도 저희처럼 판매자나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방사능 검사를 정기적이고 계획적으로 실시하는 경우에는 비록 표본 검사라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신뢰를 얻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 외 영세한 사업장이나 검사의 당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업장에서 생산되고 유통된 수산물의 경우입니다. 그리하여 검사기관의 시제품에 대한 무작위 검사를 통해 국내외를 막론한 수산물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되고, 그에 대한 보도자료가 전국에 배포됐을 때 그간 성실하고 철저하게 자체 검사를 실행해 온 생산자들의 제품들마저 도매급으로 오명을 뒤집어쓸 우려 또한 적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국산 수산물의 경쟁력 약화에 따른 매출 감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언뜻 보면 국내산 수산물의 외국으로의 수출 감소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저희처럼 수출하지 않는 생산지도 그에 따른 막대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이유인즉, 저희는 설립 당시부터 지금껏 국내산 수산물만을 취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습니다. 물론 기후변화나 남획에 따른 자원 고갈로 인해 몇몇 어종은 불가피하게 수입산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는 저희 생산지가 다루는 수산물 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원전 오염수 방류로 인해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져 왔던 국내산 수산물에 대한 신뢰마저 수장돼 버리고 나면 그를 바탕으로 버텨온 저희를 비롯한 생산지들은 소비자들의 냉대와 멸시로 인해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가뜩이나 기후 위기로 인해 기존의 국내산 수산물들의 제철 개념이 모호해지고 어획량이 매년 감소 추세에 있는 이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세계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강행하려는 일본 정부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하면서까지 그에 동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결국 공생이 아닌 공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논의보다 더욱더 첨예한 문제는 한살림의 현 방사능 기준치에 대한 향후(본격적으로 오염수 방류가 이루어졌을 때) 조정 가능성, 그에 따라 생산과 판매에 있어 곤란을 겪을 수도 있는 생산지의 처지입니다. 아시다시피 한살림 조합원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높은 문제의식 덕분에 척박한 이 땅에 안전한 먹거리와 생명 살림에 대한 세계관이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원전 오염수 방류는 전국민적 사안이자 재난이 될 것이지만 한살림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방사능 기준치에 대한 각자의 감수성과 반응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한 조합원의 경우 현재 한살림이 정하고 있는 자체 방사능 기준치(성인 및 청소년의 경우 킬로그램당 8베크렐, 영아 및 유아의 경우 킬로그램당 4베크렐)가 타 단체나 기관보다 엄격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마저도 차차 더 낮추거나 심지어 검출 자체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하신 바 있습니다. 그 논리의 배경에는 아마 이런 염려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저선량 방사능이라도 식품 섭취를 통해 체내로 들어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것이 인체의 한 구조(삼중수소의 유기 결합)로 자리를 잡으면 배출이 어렵다는 것, 바꿔 말해 축적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말 사실이 그러하여 현재의 한살림 자체 방사능 기준치를 다시 조정한다고 했을 때 경우에 따라 일부 수산 산지들, 어쩌면 대부분의 수산물이 출하도 하기 전에 폐기 처분될지도 모릅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방사능 또는 그 검출치마저 온통 원전 오염수로 인한 결과라고 오도되고 그로 인해 한살림 자체 방사능 기준치가 자연 방사능 검출치보다 낮게 조정될 때, 앞서와 같이 수산 산지들은 출하는커녕 생산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물고기처럼 매일 뜬눈으로 악몽을 꾸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저희와 같이 여러 어종과 품목을 다루는 생산지와 단일 어종 및 품목을 다루는 생산지 간 타격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저희와 같은 생산지의 경우, 특정 물품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어 해당 물품이 회수되고 공급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그 외 다른 물품들이 대체재가 되어 그에 따른 매출 감소를 일정 정도 상쇄시켜 줄 수 있겠지만 단일 어종 및 품목을 다루는 산지의 경우에는 그러한 대체재의 부재로 인해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바닷속은 한 길 사람 속만큼이나 알 길이 없고 더욱이 방사성 물질은 눈에 보이지도, 쉬이 걸러지지도 않기에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앞으로 겪게 될 해악은 그 어떤 것보다 막심할 것입니다. 혹여 두 어종 중 한 어종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되고 다른 한 어종에서는 불검출되었다 하더라도 문제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두 어종의 섭이 활동 해역이 겹치거나 같은 종류의 먹이를 섭취하는 습성이 있다면 사실에 있어서는 적합 판정(불검출)을 받은 어종이라 하더라도 심증에 있어서는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헤쳐 나아가야 할 난관은 저 방사성 물질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 더더욱 험난한 장애물들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생산과 소비는 하나라는 구호를 다만 외침으로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할 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한데 모여 빅뱅과 같은 우주적 폭발력을 발휘할 때입니다. 다시 여기, 절체절명에 처한 지구에서 하나의 삶들이 모이고 모여 무한한 우주를, 광막한 함성을, 저 죽임의 행위자를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삶도 모자라 죽음마저 오염시키는 저기 저 인위적 죽임의 행위 앞에 우리는 또 한 번 하나이자 무한한 살림의 행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 앞에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우리의 삶, 우리의 피, 그리고 우리의 짜디짠 한 방울의 땀과 눈물입니다. 아니, 한 방울의 땀과 눈물이 머금고 있는 저 무한한 생명의 바다입니다. 이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임을, 부디 모두가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