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일 일본 ‘대지를 지키는 모임’의 후지타 가즈요시 회장이 한살림을 방문했습니다. '대지를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1975년부터 무농약과 유기농을 강조해온 대중 유통조직입니다. 후지타 회장은 일본 시민운동의 1세대로 1975년에 NGO ‘대지를 지키는 시민의 모임’(현 ‘대지를 지키는 모임)과 1977년 유기농업 유통 주식회사 대지(현 주식회사 대지를 지키는 모임)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유기농업 운동을 비롯한 식량, 환경,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운동을 전개했으며, 한살림과도 교류하면서 이전부터 깊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번 방문 일정은 괴산눈비산마을 방문, 한살림연합 실무자들과의 간담회, 한살림고양파주 주엽매장 방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살림에서는 일본의 유기농업 운동의 현재 흐름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후지타 회장은 곳곳의 한살림 현장을 방문하며 한살림에서 펼치고 있는 활동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 사진. 괴산 눈비산마을의 조희부 생산자(왼쪽)와 후지타 회장(오른쪽)
▲ 사진. 한살림 생산지 '괴산잡곡' 견학 모습
방문 첫날엔 괴산으로 이동해 조희부 생산자와 함께 한살림 괴산매장, 괴산잡곡(생산지), 눈비산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39여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3년에 후지타회장이 아시아농민건강대학을 설립해 이웃 여러 나라 시민들에게 일본의 농업과 시민운동을 소개할 때 둘은 이사장과 학생으로 만났습니다. 조희부 생산자는 생산지를 함께 둘러보며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 사진. 간담회에 참석한 조합원 대표와 실무자들
▲ 사진. 후지타 회장과 한살림연합 조완석 상임대표
둘째 날엔 한살림연합 서울사무소로 이동해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간담회는 후지타 회장이 일본의 유기농업과 시민활동을 소개하고, 한살림조합원들과 소통하는 자리였습니다.
마지막 일정으로 한살림 주엽매장에 방문해 활동가로부터 진열된 물품과 매장에 관한 소개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후지타 회장은 한살림이 농민과 친환경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대지를 지키는 모임과 매우 닮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한살림 운동을 목격하고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감을 얻는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친환경 농업을 통해 농민의 삶을 지키는 한살림과 '대지를 지키는 모임'이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정보와 영감을 주고 받기를 바랍니다.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이번 교류에 관한 소감을 묻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후지타 회장과의 일문일답
Q1. 오랜만에 한국에 다시 방문한 소감을 부탁드린다.
코로나로 약 3년 넘게 한국에 오기가 어려웠다. 한살림에서 펼치고 있는 운동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방문하였다. 조희부 선생의 안내로 괴산 지역을 견학하면서 일본에선 잡곡을 거의 먹지 않는데, 매우 많은 종류의 잡곡이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생산지에서 많은 잡곡류를 취급하는 과정을 보면서 한살림 운동의 폭이 넓고 깊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Q2.학생운동에 활발히 참여하셨던 것으로 안다.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일본의 학생운동엔 반전 평화운동이 있었다.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민중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 당시엔 베트남 전쟁이 발생하였고, 일본이 그 전쟁에 가담하지 않도록 운동을 펼쳤다. 더 나아가 미국에 군사적이나 경제적으로도 종속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 운동은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 굴복하게 되었다. 이때 동료들과 관계에서 신뢰를 잃기까지도 했다. 이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되돌아보았다.
그 당시에 두 권의 책을 읽게 되면서 고민을 정리했다. 첫 번째 책은 아리요시 시와코 작가가 쓴 <복합오염>이란 소설이었는데, 농약의 무서움과 식품첨가물 등의 공포를 다룬 이야기였다. 다른 한 권은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이었다. 인류가 이대로 성장주의에 취해있으면 사회도 환경도 한계를 맞이한다는 내용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위에서부터 사회를 바꾸려 했다. 한편으로 이 점이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난 일본의 이하테 현이라는 농촌지역의 출신이라는 점이 떠올랐다. 가장 바닥과 기본이 되는 농업과 농촌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했다. 난 그렇게 '대지를 지키는 모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Q3. 일본에서 민중기금을 조성했을 때,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득했던 방법이 궁금하다.
초기에는 일본의 농촌을 지켜야 하니 수입 농산물을 절대로 취급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궁극적인 운동은 농민의 생활을 바꾸고, 소비자의 건강과 생활을 지키는 운동이기도 했다. 소비자 중에는 커피와 바나나를 먹고 싶은 사람도 분명 존재했다. 그들이 슈퍼마켓에서 이용하는 물품은 대부분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생산되거나 많은 양의 농약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려면 생산자들이 안전하게 생산하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방법으로 변화해야 했다. 즉 국내 생산자들과 소비자가 맺어온 연대 관계 같은 것이 필요했다. 이 지점에서 대지를 지키는 모임이 공정무역 물품을 도입하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아시아민중기금은 그 물품 관계를 넘어서 우리처럼 경제적으로 자립해 함께 연대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자금적으로 도와주자는 취재에서 만들어진 운동이다. 이 부분을 중점으로 설득했다.
Q4.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고 전해 들었다. 임기 종료 후, 어떤 삶을 설계하고 있는가?
저에게 여전히 남은 일은 일본의 농촌과 농민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일은 단 한 명이라도 일본 유기농산물을 먹는 소비자를 늘리는 일이다. 그것이 일본의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일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씨앗들을 지키는 일에도 참여하고 싶다. 현재 '씨앗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현재 일본은 다국적 기업 등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씨앗의 자급률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한살림도 토박이씨앗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농업에서도 씨앗을 지키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밖에도 원전을 막아서는 운동, 학교 급식을 지키는 운동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