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남 사천에서 시금치, 잎마늘 등을 재배하는 김은진 생산자입니다. 시금치는 12월부터 지금까지 쭉 수확 중입니다. 겨울을 나는 작물이지만, 갑작스러운 한파는 시금치도 놀라게 만드는 듯합니다. 12월까지는 파릇하게 잘 자라던 시금치가 1월이 되면서 동해를 입었답니다. 노랗고 하얗고 까맣게 색이 변한 시금치 잎을 손질하고 나면 수확한 무게의 절반 정도밖에 공급하지 못하기도 해요. 인력도 그만큼 많이 들고요.
품격 있는 시금치
한살림에서도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농산물의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일을 도와주는 분들한테도 ‘내가 싫은 것은 소비자 조합원도 싫은 것이 당연해요.’하고 버리는 부분이 많더라도 꼼꼼하고 깨끗하게 손질해달라고 꼭 부탁드리죠. 특히 여름에 채소를 포장할 때는 세 번 상태를 확인해요. 벌레가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죠. 저울에 무게 재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1차, 그다음 사람이 2차, 마지막으로 봉지를 오므려 끈으로 묶는 사람이 3차로 확인하죠.
스스로 잘 자라는 시금치
곧 구정이 다가오는 만큼 공급 물량이 많이 늘어났어요. 현재 두세 분 정도 꾸준히 손질, 포장을 도와주고 계시는데 서너 분 손이 더 필요한 상황이에요. 새로운 일꾼이 오시면 아무래도 처음 해보시는 일이라 손이 느려요. 결국 계산해보면 수익이 0원일 때도 있죠. 그래서 채소가 아니라 단가가 높은 토마토 같은 작물을 하라고 주변에서 많이들 권해요. 그런데 시금치는 열매채소와 달리 한 달~한 달 반 정도로 생육기간이 짧고, 물주고 풀만 잘 매주면 잘 자라거든요. 가끔 필요해 보일 때 유황이나 미생물 배양액만 주는 정도죠. 그에 비해 열매채소는 신경 쓸 것이 훨씬 많아서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농부의 노동시간
엽채류의 단점은 풀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에요. 풀에 밀리면 내가 밀리죠. 그래도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6:30쯤 집에서 나와 작업하고 점심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 작업하고 오후 4시~5시쯤에는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죠. 누구나 적당히 노동해야 살 수 있어요. 너무 오랜 시간 일하다 보면 마음도 불안해지죠. 낮에 날이 더울 때는 잠시 쉬면서 넷플릭스를 볼 때도 있어요. 형사 사건을 다루는 시리즈물을 좋아하는데, 특히 여성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요.
세상을 바꾸는 농사
대학생 때부터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사지으며 사는 삶에 대한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친환경 농사에 마음을 두고 있었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일반 농민을 만나고 관행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시작했죠. 94년도부터 3년 정도 거의 수입 없이 농사짓다 포기하고 펜션을 운영했어요. 그러다 만나게 된 김찬모 생산자님(전 한살림 생산자연합회장이자 현재 공룡나라공동체 대표)을 만나게 되었고 ‘당신 같은 사람이 한살림 생산자’라고 말씀해주시며 함께하자고 하셨어요. 농장은 경남 사천에 있지만, 생산자 수가 너무 적어 고성 공룡나라공동체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꿈. 그리고 한살림
제게 농사는 힐링 그 자체입니다. 풀 매는 일도, 씨를 뿌리는 일도 참 즐거워요. 한해 한해 배우는 것도 많고요. 사실 농사지으며 버는 수입으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참 힘든 일이 많았어요. 그래도 농사짓는 시간만큼은 즐겁게 임하는 저를 아이들이 알아챈 탓인지, 응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엄마처럼 일하면 뭐든 할 수 있겠다.’면서요. 우리 공동체 그리고 한살림 실무자가 제게 큰 힘이 되고 있답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제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내가 먹을 것은 직접 키워 먹는 것, 두 번째는 자식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것이었죠. 혼자 전전긍긍하며 농사지었던 3년 동안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인데, 한살림과 함께하면서 가능해졌죠.
농사로 보답하렵니다
모두가 어려운 이 시기에도 늘 농부들을 응원해주시고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주시는 소비자 조합원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농부가 보답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최선을 다해 농사짓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조합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앞으로도 한살림과 쭉 함께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 시금치는 보통 데쳐서 조선간장에 무치는 경우가 많은데, 경상도에서는 고추장에 무쳐요. 꼭 이렇게 드셔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