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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시작의 경험'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없는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2021.08.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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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장, 양념 등이 담겨있던 유리병을 수거하여 포장재로 재사용한다. 한살림 조합원에게는 익숙한 병재사용운동이지만 처음 접하는 이들 상당수가 신기해한다.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유리병이 눈에 밟혔던 이의 제안’과 ‘함께 시작한 병재사용 경험이 만든 성취감’이 병재사용운동을 지금까지 지속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이 같은 ‘시작의 경험’을 이웃들과 손잡고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이가 있다. 동네 카페끼리 다회용 컵을 공유하며 일회용 플라스틱 컵 없애기에 나선 정다운 보틀팩토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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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되지 않는 일회용 컵에 집중

정다운 대표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개인적 경험에서였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다 보니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매일 3개씩 꼬박꼬박 나왔어요. 어느 날 ‘이게 정말 재활용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는데 인터넷을 뒤져봐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어떻게 재활용되고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는 찾을 수 없었어요.”

6개월 가까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수거-선별-재활용 과정을 추적했던 그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재활용 마크는 ‘재질상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뜻이지 ‘실제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일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만든 결과물이 페트병을 재활용한 것보다 질이 떨어지는데다 당장 페트병도 넘쳐나는데 누가 컵을 재활용하겠느냐’라는 말도 들었죠. 어떻게 하면 ‘재활용이 잘되게 할까’가 아니라 ‘아예 안 쓸 수 있을까’로 질문이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정다운 대표는 달라진 질문에 자기만의 대답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서울 상수동에서 다회용 컵을 세척하고 대여하는 팝업카페 ‘보틀카페’를 2016년 열었다. “유리병에 음료를 담아서 ‘보틀카페’라고 이름 붙였어요. 테이크아웃할 때 유리병 보증금으로 1,000원을 더 받았는데도 다들 공감해주셨죠. ‘이런 곳이 더 많아져서 집 앞에서 컵을 빌리고 회사 앞에서 반납하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 말처럼 보틀카페가 많아지려면 먼저 다회용 컵을 세척하는 시스템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보틀팩토리를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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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카페들과 다회용 컵 공유

다회용 컵을 공유해서 쓰자고 카페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카페를 운영해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2018년 연희동에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한쪽에는 다회용 컵과 텀블러를 세척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된 ‘보틀팩토리’의 문을 열고 보틀클럽을 시작했다. 보틀클럽에 가입한 이용객은 다회용 컵을 빌린 후 보틀클럽에 소속된 14개 카페 어디에나 반납할 수 있다. “보틀팩토리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는 것이었어요. 카페에서 마시다가 컵에 담아 달라는 분에게 보틀클럽에 가입해서 다회용 컵에 담아가시라고 하면 90% 이상은 ‘그냥 다 마시고 갈께요’라고 하세요. ‘차에 텀블러가 있다’며 가지고 오시는 분도 있고요. 이처럼 각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데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무상으로 제공하니 별 생각 없이 썼던 거죠.”

현재는 ‘리턴 미(return me)’라는 이름의 다회용 컵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100℃의 음료를 담아도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 재질에 돌출된 부분이 있어 별도의 슬리브 없이도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를 모두 담을 수 있다. “초기에는 기부받은 텀블러를 빌려드렸는데 세척하다 보니 각각의 뚜껑을 맞추는 게 큰일이었어요. 이를 다른 카페와 공유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 다회용 컵을 만들었죠. 실제로 1,000번 넘게 써도 될 정도로 내구력이 좋으니 잘 쓰면 최소 1,000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대체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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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바꾼 채우장과 유어보틀위크

보틀팩토리와 보틀클럽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대안이었다면 ‘유어보틀위크(your bottle week)’와 ‘채우장’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삶의 경험을 만드는 시도였다.

2018년 처음 열린 유어보틀위크는 보틀팩토리를 비롯한 동네 카페 일곱 곳이 합심해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을 꾸려본 행사다. 참여한 카페들은 텀블러로 테이크아웃하고 아무 곳에나 반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듬해에는 동네 떡집과 분식집도 참여했고 세 번째인 지난해에는 반찬가게와 중식당 같은 음식점, 그리고 동네 마트까지 50여 곳 넘게 합세했다. “처음 제안했을 때 ‘평소에 일회용기를 얼마나 많이 쓰는데 그게 되겠냐’며 반신반의 하시던 사장님도 정작 개인 용기를 가져오는 사람이 많으니 신기하시던 게 느껴졌어요.”

채우장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팝업장터다. 근처에 통인시장이 있던 종로에서 연희동으로 이사 오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어려워진 정다운 대표가 동네 소상공인들을 규합해 시작했다. “실제로 해보면 오히려 편하거든요. 비닐봉지에 싸가면 집에서 옮겨 담고 비닐은 씻어서 버려야 하니 번거로운데 개인용기에 담은 것은 바로 냉장고에 넣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일단 어떤 용기라도 비닐봉지보다는 예쁘잖아요.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그는 유어보틀위크와 채우장의 성과로 ‘동네가 바뀌는 것’을 꼽았다. “참여했던 동네 가게들은 평소에도 대안적인 선택지를 열어놓더라고요. 예전에는 원두를 포장된 형태로만 팔았다면 이제는 손님이 원하는 만큼 덜어서도 판매하는 식이죠. 우리가 매번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는 어렵잖아요. 가게들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외에 옵션을 만든다면 뚜렷한 의식이 없는 사람도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작의 경험’은 판매자도 소비자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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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내 자원순환 활발해지길

오랫동안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포장쓰레기를 없애는 활동을 해온 정다운 대표의 눈에 한살림 매장은 어떻게 비칠까. “처음에는 왜 농산물도 꼭 비닐포장을 해서 판매하나 싶어서 물어봤어요. 벌크로 물건을 떼어 와 매장에서 포장해 판매하는 일반 마트와 달리 생산지에서 포장해서 온다는 걸 듣고는 시스템상 어쩔 수 없겠다 생각했죠. 그래도 감자, 당근 등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낱개판매를 진행해서 다행이지만 품목과 매장이 좀더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유통과정에서 가격이 올라도 꼭 사겠다는 저같은 조합원도 있으니까요.”

매장을 중심으로 지역주민과 동네 가게를 연결해 지역 내 자원을 재분배하는 역할도 제안했다. “식재료를 판매하게 되며 아이스팩이 필요해서 SNS를 통해 보내달라고 홍보했더니 몇백 개가 모였어요. 그걸 보고 본인들도 필요하다고 하는 동네 가게들에 나눠드린 적이 있어요. 생각해보면 아파트 한 동에서 나오는 아이스팩이 얼마나 많겠어요. 근데 또 한쪽에는 아이스팩이 필요해서 돈 주고 사는 소상공인이 있죠. 우리야 규모도 작고 자원을 쌓아둘 데도 없으니 한계가 있지만 한살림은 전국에 매장이 있고 조합원도 많잖아요. 도서용 뽁뽁이, 리본끈 등 아이스팩 말고도 다양한 자원을 지역 내에서 순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재사용병이나 우유갑처럼 중앙 물류 시스템을 통하는 방식 말고도 동네 커뮤니티 안에서 자원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부탁드려요.”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