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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청포도 한 송이에 여러 얼굴이 송알송알

2019.08.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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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8월호(623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옥천생산자모임 포도작목반

한살림 청포도는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와 ‘샤인머스캣’ 두 품종이며, 이중 알렉산드리아는 ‘포도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이집트가 원산지로 기원전 3천년부터 재배되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품종이다. 유럽에서는 맛과 향이 좋아 화이트와인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한살림에서는 2011년부터 이 품종을 공급해 왔으며, 현재 한살림 청포도의 주력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여름날, 알렉산드리아 주생산지인 한살림 옥천생산자모임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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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포도를 더 맛있게 하는 힘

공동체 사무실에 둘러앉은 생산자가 9명이 넘었다. 먼저 만난 최근태 생산자가 여러 차례 공동체의 단합을 자랑했지만, 그것은 공동체 대표로서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 자리에 모인 다양한 연령대의 포도 생산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살림 청포도를 위해 손발을 맞춰 온 평소의 합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옥천을 터전으로 포도 농사를 지어온 생산자들, 또 포도 품종과 유기농업 등에 대해 지식이 풍부한 생산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농사짓고 있었다.

포도 수확철이 되면 생산자들은 당일 아침 수확한 포도를 가지고 공동 선별장으로 모인다. 함께 선별을 하고, 무게를 달고, 포장하는 공동의 관리 과정에서 물품은 더 엄격한 잣대로 걸러진다. 개인별로 최대한 좋은 포도만을 따와도 선별에서 탈락하는 포도는 생기기 마련. 서너 번 품위를 확인해 가장 좋은 청포도를 한살림에 출하하고 나머지는 주스 등으로 가공한다.

“농사는 각자 짓지만 공동으로 출하하니 같은 품위로 물품을 낼 수 있어요. 선별 뿐 아니라 교재도 만들어 꽃송이 다듬는 법, 알 솎기 하는 법 등을 통일해 관리하고 있어요. 열 집이 농사지으면 열 가지의 포도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어느집이나 같은 수준의 포도를 내자는 목표로 시작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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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태 생산자가 공동 출하의 취지를 설명하자 이를 놓고 재밌는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날 출하량이 가장 많은 사람이 한 턱 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끼린 ‘우리집 포도는 아직 안 익었다’며 농담도 해요.” 좋은 결과를 위한 협동에는 나이의 구분도 없다. “우리 공동체에선 송이 끝에 달린 일명 ‘똥구멍 포도알’이 16브릭스(Brix)가 되지 않으면 출하를 못해요. 한살림 출하

기준은 13브릭스인데 더 익히느라 나무에 하루 이틀 더 두면 부담도 되지만, 어떡해요. 같이 하는 거니까 말 들어야지.” 작목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동훈 생산자의 ‘말 들어야지’라는 표현에 다들 한바탕 웃는다.

향이 좋고 맛있다는 알렉산드리아를 더 맛있게 하는 힘은 바로 협동이었다. 함께 농사짓는 시간들이 모여 공동체를 더욱 끈끈하게 하고, 나아가 한살림 청포도에 대한 좋은 평가로 이어지니 협동의 달콤함이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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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답게 짓는 포도 농사

최근 시중에서는 ‘샤인머스캣’이라는 품종이 유행이다. 씨가 없는 포도로도 유명세를 탔지만 본디 샤인머스캣도 씨가 있는 품종이다. 다만 상품성을 위해 호르몬 처리를 해 씨를 없애는 것뿐이다.

“포도는 암꽃과 수꽃이 함께 있어 자연적으로 씨가 맺히는데, 만개 후 3일에서 10일 사이에 지베렐린이라는 식물호르몬을 주면 씨방만 남고 씨가 없어져요. 여기에 한 번 더 호르몬 처리를 하면 포도알의 크기가 커지지요.” 하지만 한살림에서는 호르몬제를 비롯한 생장조절제를 사용하지 않기에 같은 품종이라도 한살림 샤인머스캣에는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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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생산자들은 호르몬 처리 대신 땅을 살리고 작물을 연구하며 정직하게 농사짓는 것을 택한다. “파쇄한 나무를 3년 정도 발효시킨 뒤 포도밭에 넣었어요. 관행으로 포도 농사를 지을 때는 1.5% 정도이던 밭의 유기물 함량이 지금은 5%까지 올랐어요. 5년 이상 걸려 만든 땅이죠. 땅이 좋아지니 병충해에도 강해지는 것 같아요.” 과실에 피해를 입히는 깍지벌레는 일일이 손으로 잡고, 포도나무 껍질을 벗겨 알을 낳지 못하게 예방한다.

손 가는 일 많은 한살림 농사지만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포도를 위해서 감수하는 선택이다. “건강한 땅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는 것은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껍질 째 먹어야 하니 농약은 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무엇보다 한살림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으니 나무에서 충분히 익힌 맛있는 포도를 딸 수 있어요. 포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살림 농사의 장점이에요.”

한 알 한 알 모여 한 송이 포도를 이루듯, 생산자 한 명 한 명이 서로의 존재로 빛나는 공동체가 된다. 정성껏 농사짓는 여러 공동체의 생산자들과 그 정성 알고 귀하게 여기는 조합원이 모여 한살림이 된다. 올여름 만나는 포도 한 송이에 한살림이 있다.